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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의정활동 4년

(3) 행사 불참에 차 없음까지 트집을 잡히다 나는 행사장을 다니면 다닐수록 ‘이러려고 정치에 투신했느냐’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인터불고 호텔에서 코스요리를 두고 아쉽게 돌아서기는 했으나 ‘의원님, 의원님’ 하는 대접부터 붉은 카펫, 박수 소리, 외교적 언사들이 모두 마뜩치 않았다. 아 이것이 바로 ‘부르조아 정치’인가. “정치인들이 회의와 연구에 매진하거나 낮은 자세로 주민을 만나지 않고 행사장에서 얼굴이나 비치고 간다”는, 의원이 되기 전 들었던 불만이 내 귀로 덮쳐왔다. 나는 행사장 참석을 가려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참석을 거절한 첫 행사가 구미상공회의소의 시의원 당선자 초청 행사였다. 구미상의는 보수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성향이 농후해 보였다. 민주노동당 소속 김성현 당선자는 내게 “나는 가지 않겠다. 김 당선자는 그.. 더보기
(2) 아무 근거 없는 삼성전자 몰표설 당선 후 그다지 크게 기뻐하지도 않았지만 작은 기쁨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당선자 신분으로 보낸 2010년 6월은 답답함과 짜증으로 보낸 한 달이었다. 나를 제도 정치권에 떨궈준 지지층은 빠르게 흩어졌고 동네에 별 연고가 없던 나는 그들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선거 기간 나를 지지하지 않았거나 내게 무관심했거나 나를 무시했을 사람들부터 먼저 만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나를 한 세력의 대표자로서, 이념을 가진 정치인으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기간에 돌아다녔던 “민주노동당의 위장 후보”라는 입방아도 빠르게 사라져갔고 거꾸로 내가 ‘무’소속임을 빌미로 마치 ‘무색무취’한 노선의 정치인인 것처럼 대접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났다. 그들은 내게 “한나라당에는 천천히 입당해도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충고나 일삼.. 더보기
(1) "물에 섞이지 않는 기름이 되어달라" 2010년 6월 3일 새벽 3시경, 득표율 21.15%로 3위 당선이 확정되었다. 4위를 불과 130표차로 따돌리고 턱걸이로 당선하는 동시에, 1, 2위 당선자와 1, 2% 수준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개표 현장에 참관인으로 보낸 친구 둘이야 환호작약이었겠지만, 선거본부 사무실에 있던 사람 누구도 소리를 지르거나 손뼉을 치지 않았다. 담담한 승리였다. 남아 있던 운동원들은 이기는 것도 처음이었고 지는 것도 경험해보지 않았다. 그래도, 선거는 이기는 것이 좋다. 선거 뿐이랴 모든 승부가 ‘승리냐, 패배냐’의 일차원으로 보자면 승리 쪽이 더 좋은 것이다. 공직에 앉아 포부를 펼치는 것은 나중의 일이라지만 선거를 추스릴 때도 당선자 쪽이 훨씬 좋다. 당장에 금전적인 부분에서 그렇다. 이기면 보전 항목에 해당.. 더보기
4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더보기
낙선 소감 김수민입니다. 4년동안 크나큰 영광을 누렸습니다. 작지만 소중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경북에서 가장 선진적인 주민참여예산제 시도와 영유아 무상예방접종, 비정규직 권리보호 조례와 장애인휠체어수리 지원 조례 제정 등이 있었습니다. 낙동강변 난개발을 시민의 힘과 더불어 막아냈고 청소민영화를 둘러싸고 힘겨루기나마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아내지 못한 것들에 사정없이 밀려왔습니다. 인동주민센터, 산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신동 송전철탑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청년 노동자가 과로로 쓰러져 숨지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불산사태를, 단수사고를, 우리 동네에서 속출하는 죽음들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속에서 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대 양당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보는 .. 더보기
지난 4년의 의정활동을 보고합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좀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미시 역사상 최초의 혁신 성향 의원으로 당선된 이래 지난 4년여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단수사고와 불산사태 등 전국에 알려진 큰 사건도 있었고, 그때마다 현장에서 뛰느라, TV와 라디오에 출연해 알리느라 정신없던 기억이 납니다. 주민들의 성원 덕분으로 제 스스로 기대했던 것 이상의 일들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조례안 대표발의 최다, 출석률 최고, 청원소개 최다, 시정질문 최다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수시로 주민들과 서명운동도 벌였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속상한 일들에 잠 못 이루기도 했고, 의원직을 두 번이나 걸어가며 싸우기도 했습니다. 지방의원의 주임무가 개발공약 남발이나 행사 때 얼굴 비치기라고 생각하는 일부 시선에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