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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의정활동 4년

(13) 첫 5분자유발언은 '재벌마트 규제' 연수에서 돌아오는 길 시민만족과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마트 동구미점 행정재판 선고 결과였다. 이마트 동구미점은 지역 중소상인들의 반발로 인동 지역 최대 이슈로 꼽혔다. 구미시도 이마트 동구미점이 산업단지 지원시설로 볼 수 없어 규모를 축소하라는 취지에서 건축허가 반려조치를 취했었다. 동구미점의 위치는 임수동(진미동 내) 구미제3국가산업단지였다. 또 구미시는 반려조치 사유로 교통 체증으로 인해 부지 부근 도로를 넓혀야 하고 교통섬과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직접적으로 건축을 불허하기 힘든 처지에서 그나마 지자체로서 최선을 다한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경북도의 교통영향분석과 개선대책 심의에서 도로 확장 방안은 삭제되었었고 심의에서 지적되지 않은 교통섬 설치 등의 .. 더보기
(12) 삼족오연극제에서 헤매다 업무보고가 끝나고 산회하고 나니 나는 넓은 모래사장에 박힌 콜라병 꼴이 되었다. 구미시의회는 8월에는 회기를 잡지 않았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하나라도 더 많이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몰랐다. 의정활동을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한번은 주민자문회의를 소집했더니 딱 1명만 방문했다. 여름 휴가철이니 사생활을 찾고 좀 즐길 만도 했는데 마음이 그렇지 못했다. 인동동에 새로 동장이 부임해오면서 구역별로 통장 등을 모시고 주민간담회를 진행했다. 조금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다. 나를 만나는 주민들이 구역별로 반응이 적잖게 달랐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지역구 다른 의원에 반비례하는 성향이 있었다. 어떤 구역의 간담회에서는 내게 말을 거는 사람조차도 드물었다.. 더보기
(11) 보육교사처우개선비 두고 신경전 나는 총무과 업무보고에 우선 순위를 두었다. 총무과에는 학교 교육을 지원하는 교육지원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교육정책은 나의 기획행정위 활동 중심에 있었다. 학교무상급식, 학습준비물비 및 교복비 지원 등 교육복지에서부터 고교평준화 등 대안적 교육담론을 지원하는 일까지에 목표를 두었다. 교육지원계가 총무과에 속한 사정은 조금 우습다. 공무원의 후생복지를 담당하는 총무과는 직원 교육도 맡고 있었는데, 직원 ‘교육’을 맡은 김에 학교 교육지원도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주요 공약이었던 무상급식 추진 계획에 대해 질의했다. 경북 지역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 치고는 비교적 어렵게 재선된 남 시장은 선거를 치르자마자 “시민단체 요구사항 중 학교무상급식과 주민참여예산제, 이 두 가지는 반드시 도입하겠다”고 약속하고 .. 더보기
(10) 풀뿌리사랑방 도둑 들다 7월 10일 풀뿌리사랑방에서 조촐한 개소식을 열었다. 옆집 카센타 아저씨도 잠시 모셨다. 그날 몇몇 참석자 분들이 ‘사람사는세상’ 소속이라고 소개하자 카센타 아저씨는 “저는 짐승사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농담이지만 뼈아픈 현실을 찌르는 소개를 하셨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난 13일 사랑방에 출근했더니 뭔가 횅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노트북과 엑스박스 게임기가 사라졌다. 가족들에게 “누가 치웠냐”고 물었더니 “오늘 안 보였다”는 답만 돌아왔다. 도둑 맞은 것이다! 여름이라 사무실 뒷쪽 창문을 열어놓고 있었는데 그쪽으로 도둑이 들어왔다. 사무실 뒤의 작은 뒷마당에 가보니 담장 밑 나무 심는 화단에 사람 발자욱이 있었다. 노트북은 대학 졸업 선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이고, 엑스박스는 집에 있던 걸 사무실에 옮겨 .. 더보기
(9) "김 의원, 협찬 같은 거 하지마" 의원 임기가 시작되고 나서 처음으로 들른 지역 행사는 -내 기억으로는- 진미동사무소에서 열린 경로잔치였다. 진미동에는 해마다 청년회 회원들이 정성을 모아 경로잔치를 여는 좋은 전통이 있었다. 다만 행사 자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네안에서 후원금을 모으는 것으로는 역부족이어서 기업이나 한국노총 노조쪽에 손을 벌리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돈을 내는 쪽, 그리고 돈 낸 쪽과 연관이 있는 세력이나 정치인에 힘이 실리게 된다. 기부가 가진 역기능이다. 공공 예산으로 해결하려면 형평상 마을마다 경로잔치를 지원해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했다. 일회성이라 노인복지라 보기도 어려웠다. 그렇다면 최선의 방법은 민간의 십시일반인데 이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토박이가 아닌 나는 잘 몰랐지만 진미동에는 개발로 인해 갑자기 부.. 더보기
(8) 집회 도중 졸지에 '록커 시의원'으로 데뷔 7월 1일 저녁, 금속노조 KEC지회가 주최한 문화제에 참석했다. 용역에게 기숙사 농성장을 침탈당한 그들은 회사 정문앞에서 농성중이었다. 듣던대로 여성 조합원들이 많았고 첫 만남이었지만 총각 시의원을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직장폐쇄 사태 직후 곧바로 포지션을 잡았다. 어찌 보면 조합원들은 투쟁을 하고 정치인은 중재를 서는 것이 맞는 듯도 하다. 그러나 나는 초선의 기초의원이었고 중재 시도는 사치였다. 노동의 가치를 대변하는 시의원으로 처신을 분명히 해야 했다. 그래야 시장이나 국회의원의 중재를 이끌어낼 여지도 있는 법이다. 대학 다니며 가끔 노학연대 활동에 동참할 때도 집회 발언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이날 마이크를 건네받아 마음껏 연설했다. 선거 때 한창 펼쳤던 강성 연설이 되살아났다. 이후에도 그랬지만.. 더보기
(7) 모두 무효표를 던지다 등원 직전 형곡동 민주노동당 사무실을 들렀다. 민노당 김성현 의원과 무소속 박교상 의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 의원은 의장단 선거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왔다. “전 무효표 던지겠습니다.” “그래 각자 알아서 투표하자.” 사실 당시 또다른 의원이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었고 우리 세 의원은 그쪽에 다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후보의 ‘역습’은 하루이틀만에 없던 일이 되었다. 포기자는 또 있었다. 의회 복도에서 만난 손홍섭 의원은 “의장 선거에는 나서지 않는다. 부의장 선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나는 의장선거에서 개표위원을 맡았다. 의회 표결 시 개표위원은 나이가 어린 순서대로 두 명씩 선임하게 되어 있어 나(1982년생)와 민주당 김정미 의원(1971년생)이 첫 회기의 개표를 담당하.. 더보기
(6) 캐쥬얼 등원의 전말 서울에서는 예전 대학 시절 어울렸던 너댓살 많은 학과 선배들도 만났다. 4, 5년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형들도 있었다. 갑자기 시의원 당선자가 되어 나타난 나를 다소 어리둥절하게 맞으면서도 “야~ 구미에서 어떻게 당선되었냐”며 신기해 했다. 그들과 맥주를 기울이며 월드컵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형들은 여전했다. TV 속 중계보다 그 형들의 해설이 더 재미있었다. 그 뒤로 그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형들은 SNS를 통해 가끔 의정활동을 응원했다. 한편 개원이 다가오면서 구미시의회 의장단 선거는 가닥이 잡히고 있었다. 슬쩍 예상하기에도 허복 의원이 우세했다. 부의장으로 나선 김영호 의원 등 을지역 무소속 의원들이 가담했고 친박연합도 그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황경환 의원과 손홍섭 의원은 다섯 표를 넘길 것 같지.. 더보기
(5) 새로운 정당을 희망했지만 선거가 끝나고 한 차례 서울에 들렀다. 출마 직전 같이 밑그림을 그리고 정책 기조를 짰던 친구들과 선배들이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간략히 선거 평가를 진행하며 나는 “성공한 선거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인동동, 진미동의 투표자 가운데 35%가 도의원 정당명부 선거에서 야권 정당(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사회당)에 투표했다. 그러나 야권 유일 후보로 나섰던 나의 득표율은 21%. 아무리 높게 잡아도 야권 투표자의 60% 가량만 나를 지지했으며 상당수의 야권표가 빠져나간 셈이다. 무소속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무소속 후보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후보보다 유리할 게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에 들른 김에 임종인 전 국회의원을 만났다. 편집진이던 김영국 씨가 만남을 주선.. 더보기
(4) 의장 후보들의 파상적 구애 한편 점점 가열되던 구미시의회 의장단 선거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라 있었다. 당선된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 내 처지에, 선거가 끝나자마자 또다른 선거에 열을 올리는 이들이 머리로는 몰라도 가슴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의장단 선거에서 내 한 표는 무거웠다. 구미시의회에 야권 의원은 3명이었다. 다른 20명은 한나라당이거나 친박연합이거나 무소속이었지만 서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들끼리의 싸움이 되고 나면 야권 의원이 결국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처음 접근해온 의원은 연찬회를 했던 그날 만났던 한나라당 황경환 의원과 같은당의 김익수 의원(신평, 비산, 공단, 광평)이었다. 김 의원은 이런저런 인맥으로 신호를 보내왔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구미경제정의실천연합에서 김 의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