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된 통합진보당과 결을 달리함은 물론 보수야당 계보의 새정치민주연합과 차별화된 ‘진보적 제3신당’이 물살을 타고 있다. 이를 추진하는 ‘국민모임’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제3신당이 탄력을 받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강경 우익 노선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둘째, 그럼에도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은 무능하며 정체되어 있어 세월호 사건, 기초연금 후퇴, 정규직 보호요건 약화, 사자방(4대강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 등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지 못하다.

셋째, 소위 진보진영의 일각인 통합진보당이 정권의 해산 시도와 스스로의 혁신 실패로 무너져 내린 데다가 통합진보당을 제외한 진보 진영 역시 분열과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평화생태복지국가' 지향하는 제3신당 취지는 '새누리당 심판',
'새정치연합 극복', 통합진보당류를 제외한 '진보 통합'
'국민모임'에는 민주당 성향 자유주의자부터 좌파까지 망라


이른바 ‘원로’들이 정치권에 고언을 보내고 훈수를 두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은 사뭇 다르다. 우선 국민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이 다양하다. 신학림 미디어오늘대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강내희 중앙대 교수 등 시민사회운동에 몸담은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명진 스님, 공선옥 소설가의 이름도 보인다.

김민웅 목사, 정지영 영화감독,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 등은 민주당 등 자유주의 당파 쪽으로 기울었던 인사들이다. 반면 조돈문 카톨릭대 교수, 노중기 한신대 교수 등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에 관여했던 진보좌파 지식인이다.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도 이수호, 임성규, 김영훈 등 전직 민주노총 위원장들도 가담했다. 김세균 전 교수의 경우는 예전에 민주노동당-진보신당보다 더 좌파적인 성향의 학자로 분류되었었다. 단, 통합진보당과 유사한 민족해방파 성향의 인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요컨대 국민모임이 추진하는 ‘진보적 제3신당’은 ‘예전 진보정당+옛 민주당 스펙트럼의 개혁적 일부’인 셈이다. 다시 말해, 진보진영을 통합하는 동시에 세를 불려 새정치연합에 대적한다는 구상이다.


국민모임은 24일 ‘평화생태복지국가’를 기치로 내걸었으며, 새정치연합에 대해서는 “분열과 무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여당의 독주를 막고 국민의 생존권을 지킬 의지와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고 진단했다.  

국민모임이 과거 민주노동당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을 밑그림으로 펼치면서 기존 정치인의 가세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25일에는 정동영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순위 1위에 올랐다.


정 고문은 노무현 정부 시기까지는 민주당 계열 내 보수 성향으로 꼽혔으나, 대선 패배 이후 정책을 진보화하고 노동자 투쟁현장을 찾는 파격적 변신을 감행했다. 민주당이 보편적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는 ‘좌클릭’에도 분명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새정치연합의 당권 경쟁이 문재인-박지원-정세균의 대결로 정체 내지는 과거 회귀의 양상을 보이면서 정동영 고문의 결단에 불을 당기고 있다. 새정치연합측은 정 고문의 탈당을 만류할 것으로 보이나 국민모임측은 정 고문이 탈당 결심을 굳혔다며 기대하고 있다. 이 가운데 27일쯤 정 고문이 결심을 밝힐 것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정 고문은 과거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보다는 대중적 지지세가 잦아들었지만 야권에서 여전히 인지도 최상위권의 정치인이며 전북 지역 기반도 갖고 있으므로 신당으로 옮기는 즉시 대표적 정치인으로 등극할 것이다.

보수에서 진보로 변신한 정동영, 신당 참여할까
천정배 전 의원 등 물망에 올랐지만 대거 탈당은 없을 듯
초점은 새정치연합보다는 우선 정의당 쪽으로

정 고문 외에는 천정배 전 의원이 물망에 오른다. 비노 계열이면서 민주당 내부에서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인 정치인들이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신당에 가담할 공산이 높다는 뜻이다. 진보적이면서도 친노 성향을 가진 정치인들은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잔류할 것이다.


특히 진보 성향으로 꼽히는 비례대표, 이를테면 최민희, 은수미, 장하나 의원 등도 탈당할 가능성은 일단 미미하다. 비례대표 의원은 탈당 즉시 의원직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현직 의원 가운데 신당을 택할 인사는 흔치 않을 것 같다.


과거 안철수 캠프에 참여했지만 민주당과의 합당이나 그간 안철수 의원이 선보인 보수적 노선에 불만을 품은 인사들도 주목할 만하다. 다만 이들이 아직은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당에 몸담더라도 당장에는 파괴력을 갖기는 힘들다.

정동영 고문에 쏠리는 눈총도 있다. 새정치연합에서 친노 세력, 보수 세력에게 밀리면서 대선 후보직을 따내기 어려워지자 독자 행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힌편 제3신당에 새정치연합 정치인들의 대거 합류는 것이 어려워 보이면서 초점은 자연히 정의당의 행보로 옮겨진다. 정동영 고문이 노인폄하발언 논란 등 과거 전력으로 인해 최근의 정책적 진보화에도 불구 국민적으로 여전히 식상한 이미지를 갖고 있으므로 이를 중화할 수 있는 정의당의 진로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측면도 있다.

정의당은 국민참여당 출신(유시민계)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탓에 전통적인 진보정당과는 성격이 다르며, 동시에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 출신들을 아우르고 있어서 제3신당과 가장 비슷한 정당으로 꼽힌다. 당세는 작지만 노회찬, 심상정, 천호선, 박원석과 같은 스타 정치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정의당은 이렇다 할 반응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 그동안 당원게시판을 통해 타당과의 통합보다는 독자 노선에 무게를 두고 있는 당내 여론이 표출된 바 있으므로 순순히 통합에 응할 것 같지는 않다. 제3신당과의 관계를 두고 당내 논쟁에 돌입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의당이 제3신당과 따로 떨어져 걷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 ‘새누리당이 싫지만 그렇다고 새정치연합을 밀어줄 수는 없다’는 여론이 제3신당으로 쏠리면 진보정당들이 모두 변두리로 밀려나갈 수 있고,
 정의당으로서는 이런 여건을 외면할 수 없다.

최근 정의당 당원 여론조사에서 노동당, 녹색당과의 통합에 관해 응답자의 7, 8할이 찬성했는데, 이들 정당과도 통합하는 조건으로 제3신당 참여에 찬성하는 여론이 등장할 수도 있다.

제3신당 창당, 진보정당들의 잠재력을 앗아갈 가능성 있다
정의당은 독자노선 가닥 잡아도 제3신당 외면하기 힘들어
노동당 합류 희박하나 당내 '재편 논의'에 영향 끼칠지도 
 

정동영 합류 문제도 정의당에게 관건이다. 정동영과의 제휴는 가능하더라도, 정의당이 정동영을 신당의 대통령 후보로까지 인정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편 노동당이나 녹색당은 제3신당 결합 확률이 희박하다. 노동당 당원들은 국민모임 인사들을 곧잘 ‘원로들의 철 지난 합창’ 정도로 규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녹색당과 국민모임은 아예 서로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 분위기다. 노동당과 녹색당의 독자노선이 매우 또렷한 데다가 국민모임 입장에서도 당세가 작은 쪽에 무리하게 동참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


다만 노동당 내부에서 정의당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재편파’가 통합 대상을 제3신당으로까지 넓히느냐가 변수로 남아 있다. 김세균, 노중기, 조돈문 같은 진보좌파 지식인들까지 제3신당에 이름을 올린 마당에 노동당 역시 충격과 소외에서 아주 자유롭지는 못하다.


제3신당은 새정치연합의 이탈을 얼마나 이끌어낼 것이냐, 새정치연합 이탈 세력과 정의당 등 양쪽을 아우를 수 있을 것이냐, 새정치연합 이탈세력이 없을 경우 통합진보당을 뺀 진보세력을 전반적으로 통합할 것이냐,에 현실정치세력으로서의 성공 요건이 달려 있다.

그러나 제3신당이 중장기적으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제3신당의 목적은 새정치연합에 대적하는 것인 동시에 새정치연합을 대체하는 것이다. 대체한다는 것은 새정치연합을 누르고 제1야당으로 올라선다는 의미지만, 여기에는 통합야당에서 안정된 지위를 차지할 경우 새정치연합과 통합할 수도 있다는 복선이 숨겨져 있다.

민주당을 제치고 지지율 2위를 달리던 안철수신당(새정치연합)도 역사적으로 구축된 민주당의 구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통합 전철을 밟았었다. 당명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하고 통합 직후 안철수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았으나 이제는 ‘도로 민주당’이며 안 의원은 대권은 물론 당권을 얻기도 버거워졌다.

제3신당이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다 해도 새정치연합을 뿌리치기는 난망하다. 오히려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새정치연합과 통합하면서 확보할 지분이, 그러니까 통합을 향한 유혹이 더 커질 것이다. 비록 나중의 일일지라도 제3신당은 독자노선과 통합노선의 갈등을 잠재하고 있다.

제3신당은 새정치연합과의 통합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제2당 어렵다면 생존해서 제3당으로 안착할 길 찾아야


2016년 총선에서 제3신당은 새정치연합과 전면전을 펼칠 수 없다. 새누리당이 약한 호남권에서는 정면 승부가 벌어지겠지만, 그 밖의 지역에서 양측의 전면전은 새누리당의 반사이득으로 직결된다.

2004년 총선 당시의 민주노동당만큼 독자성을 가진다면 모르겠지만, 과연 제3신당이 전면전에 필요한 뱃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노무현 정권기였으며 탄핵역풍으로 새누리당의 몫이 현격히 줄었던 2004년과는 달리 2016년 총선은 정권교체의 승부처로 통할 것이다.

그래서 제3신당과 새정치연합의 비호남권 후보단일화는 불가피하다. 후보단일화가 당대당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이뤄지면 그만큼 양당의 차별화가 희석되는 반대 급부가 있다. 국민들 눈에는 ‘다른 당이지만 같은 세력’ 혹은 ‘같은 세력이지만 당이 다를 뿐’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경유하는 동안 통합을 비켜갈 수 있을까. 

제3신당이 새정치연합을 꺾고 제2당에 올라서든 아니면 유리한 위치에서 새정치연합과 통합을 하든, 이는 새정치연합 인사들이 대거 이탈해 제3신당에 참여하는 사건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대거 이탈 역시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제3신당은 대성공보다는 생존해서 안정적으로 제3당을 구성하는 데 목표를 두는 것이 맞다. 이 경우는 정의당 등과의 통합이 필수적이다. 제3신당 인사들이 현실 파악 능력과 강한 돌파력, 힘을 아끼고 집중하는 꾀를 가졌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Posted by 김수민

 

 

지역 언론 <뉴스풀e>에 게재한 서평입니다.

 

http://newspoole.kr/master/news_article.php?mode=modify&number=724&start=0&search_order=&cate=&keyword=&pick_news_search=

Posted by 김수민

 

 

골목길에서 중학생이 초등학생의 돈을 빼앗게 될 때, 중학생은 어떻게 처신할까요? 사람이 별로 지나가지 않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상대방 초등학생에게 조용히 하라고 겁을 준 다음 나중에는 “주변에 이르면 큰일날 줄 알라”고 협박하겠죠. 그는 최대한 은밀하고 조용하게 이익을 취하고자 할 겁니다.

 

반대로 돈을 빼앗긴 초등학생은 상대방이 처벌받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물론 중학생이 협박을 했기 때문에 남에게 알린다는 게 겁이 나기도 하겠지만, 선생님과 부모님과 친구들과 함께 의논하면서 안전해지려고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합니다.

 

‘공공 장소’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겁니다. ‘사사롭다’는 말도 있지요? ‘공공화(公共化)’와 ‘사사화(私事化)’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학생은 사건을 사사화시키는 사람이고, 초등학생은 공공화시키는 사람에 해당합니다. 문제를 공공화시키려는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문제에 끌어 들이고 보다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구경할 수 있도록 합니다. 누가 어디서 돈을 뺏는지 사람들이 알게 되고 또 지켜보게 된다면, 그 중학생은 돈 뺏기가 힘들어지겠지요? 이런 중학생 같은 사람은 문제를 지켜보지 못하도록 만들고,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합니다.

 

정치인은 문제를 ‘공공화’시키는 사람입니다. 물론 정치인이라면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 모든 정치인이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어떤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정치를 하는가 하면,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힘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챙겨주려는 정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 정치인은 공개적인 곳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발언을 하기보다는 몰래 숨어서 일을 벌입니다. 돈 뺏는 사람이 으슥한 곳을 찾듯이 말이지요.

 

내가 2013년 11월 구미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가진 강연 <정치란 무엇인가?> 중 일부다. 나는 학생들에게 정치의 본질이 갈등이며, 그 갈등을 공공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본연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가 곧 갈등이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정치가 일으키는 갈등에 혐오를 느끼고 있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앞으로도 단절되기 어려운 현상일 것 같다. 그러나 정치학자 E. E. 샤츠슈나이더는 갈등을 강조했고, 1970년대에 사망한 그는 민주주의 정치학에 오늘날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론 나의 이 강연도 그에 빚지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당파 싸움'에 환멸을 느끼며 '통합'을 요구한다. 정치인들은 결코 그 요구를 묵살하지 않는다! 그들도 툭하면 '통합'을 요구하고 선동하며, 저 많은 시민들의 요구에 제대로 응답한다. 그리고 그렇게도 통합을 역설하지만 정치인들은 숱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시민들이 투쟁이 아니라 통합을 외치는 것은 문제의 결과가 아닌 원인인 셈이다. 갈등은 인간사에서 사라지는 법이 없다. 갈등을 극복하리라는 환상이 낳은 '통합'의 실제 내용을 두고서도, 이 통합론과 저 통합론의 갈등은 계속해서 진행된다. 이럴 수 없다는 기대는 어리석은 것이다. 또는 시민에게 필수적이고 불가피한 갈등을 피해가거나 묻어버리려는 음모에 충실한 결과다.  

 

많은 시민들의 착각과는 다르게, 현시대는 갈등을 '사사화'하는 시대였다. 기업활동에 대한 자유방임주의, 복지 지출 확대에 대한 저항,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너희 복지는 너희가 돈 벌어서, 시장과 기업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라는 선전, 부자와 대기업에 적용되어온 감세, 정리해고와 불안정노동에 대한 방기와 묵인, 학생인권 규정을 학교장의 재량으로 돌리려는 교육계 일각의 시도, 사회경영보다 자기계발이 우선시되는 사회문화... 갈등의 범위를 제한하거나 사적 영역으로 내모는 자세야말로 이 시대의 주류정치경제학이었다.

 

이러한 갈등의 사사화는 위에서 내가 거론한 '삥 뜯고 나서 가볍게 넘어가려는 중학생'에게 유리하게, '뜯기고 나서 전전긍긍하는 초등학생'에게 불리하게 전개된다. 여기서, 어지간한 사람은 친구, 교사, 부모님, 갈취 현장의 구경꾼 등 새로운 관여자가 나타나야 구도가 바뀔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것이 갈등의 사회화이며 공공화이다. 샤츠슈나이더는 갈등의 전염성과 외부자들의 참여를 중시했다. 또 그는 단순히 가시적인 갈등에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는 갈등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갈등의 치환'에 주목했다.

 

미국 정치학자의 논의로부터 잠시 한국으로 되돌아오자. 오래도록 한국 정치를 지배한 구도는 '지역'이었다. 한국 정치판은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점하고 이에 기반해 지역을 분할하는 경향에 빠져들었고, 반대편에는 '지역주의를 타파'한다며 다른 대안이 아닌 지역주의에 똑같이 집중하고 지역주의를 역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계층, 계급, 성, 연령, 생태에 관련된 구도들은 정치 전면에 등장하지 못했고, 정치는 시민의 살고 먹는 문제로부터 더욱 동떨어지게 되었다. 지역 구도가 낳은 갈등이 다른 갈등을 제압해버린 것이다. 결국,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시도는 '지역주의 타파'가 아니다. 지역 구도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갈등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갈등의 치환'이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의 문제를 사회화하고 정치의 쟁점으로 부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샤츠슈나이더는 일단 이익집단은 답이 아니라고 못박는다. 이익집단은 평범한 여러 사람들이 지향하는 공익을 두루 대변할 수 없을 뿐더러, 그가 통계로 입증하듯 이익집단이 정당에 끼치는 영향도 예상보다 매우 제한적이다. 예컨대 미국의 대표적 전국 노조인 AFL-CIO의 조합원수에 비해, 이 노조를 통해 미국 민주당이 새로 조직할 수 있는 표, 공화당에 빼앗기지 않고 직접적으로 가져오는 표는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치는 공화당과 기업집단간의 관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익집단은 여러 갈등 중 특정 사안에만 몰입하는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려고 하면 모여 있는 구성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또한 이익집단은 먹고 살기에 바쁜 시민들의 직간접 참여가 어렵고 상류층에 기울어지는 경향을 갖고 있다. 가령, 정부나 지자체가 관련 이익집단과 협의를 하겠다며 '참여의 장'을 열어놓을 때, 거기에 들어오는 이들은 날마다 다녀야 할 직장이나 학교가 없이 자신의 자본이나 재산으로 먹고 살기 충분한 이들이 될 것이다. 샤츠슈나이더는 따라서 민주주의를 이익집단들의 경합과 조화에 바탕을 둔, 미국에서 '다원주의'로 부르는 이론과 이념을 일관되게 비판하고 있다.

 

샤츠슈나이더의 궁극적 대안은 바로 '정당'이다. 그는 "민주주의를 만든 것은 정당이며,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까지 단언한다. 정당은 갈등들 사이에서 우선 순위를 부여하면서 가장 큰 규모의 대중을 동원한다. 또 가장 많은 대중이 참여하는 '선거'라는 절차에서 이기거나 질 수 있는 주체라는 점에서 이익집단과 결정적인 차이점을 가진다.

 

그의 정당정치론은 인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고 그것이 없는 인민을 무지몽매하다고 보는 태도를 단호히 비판하는 것과 긴밀히 엮여 있다. 현대사회의 인간은 사회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일들 모두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을 기울일 것과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구별하고 있다. '전문가' 역시 어떤 문제와 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조건으로 다른 문제와 분야에는 무지해지는 길을 택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샤츠슈나이더는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을 무지하고 시민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태도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평가한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실은 노예를 배제한 특정한 '시민'들끼리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를 운영할 만큼의 실력을 갖춘 인민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보았다. "민주주의를 위해 인민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이를 한국 현실에 적용해보면, 예컨대 '깨어있는 시민'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 까다로운 요건을 부여하면서 민주주의에 이르는 길을 저해하는 '자격증'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로 '깨어있는 시민' 논의는 보통 사람을 위한 정치와 민주주의의 구성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정치참여자들이 도덕적 우월성을 느끼고 못미더운 동료시민들을 정치로부터 더욱 멀리 격리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샤츠슈나이더는 인민의 주권을 온전히 실현시키고 시민들, 특히 바쁘고 각박한 시민들의 이해를 폭넓게 대변하고 조직하는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유명부실한 정당이 어떤 정치를 만드는가는 한국에서도 뼈저리게 증명된 바다. 끊이지 않는 정치개혁 담론, 부적격 정치인을 걸러내려는 시민운동단체의 캠페인, 결과적으로 상당한 물갈이를 이룬 국회, '새정치'를 구현하리라는 인물에 대한 열광적 지지 등에도 불구 정치는 점점 나락으로 빠지고 있다. 기득권으로 당내 이견세력과 반대 국민을 제압해온, 위기 때는 이름이나 당 로고 색깔을 바꾸는 따위 쇼로 일관해온 한국의 정당들이 이 주범이다.

 

그나마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정당에 참여해오고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 시즌 6에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후보가 당원 자택의 문을 두드려가며 선거운동에 나선다. 2개 정당이 정치권을 지배하는 미국과 달리, 보수주의, 사회민주주의, 녹색주의, 시장주의, 혁명적 사회주의, 극우 등 다양한 정당들이 할거하고 있는 유럽이나 남미는 더 많은 시민들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의 두 거대 정당-새누리당, 새정치연합의 당원은 명목상으로는 수백수십만이지만 그중 당비를 내는 당원은 1/10 정도에 불과하다. 또 한 선거구에서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 투표용지에서 우열을 만드는 기호 제도, 비례대표제의 낮은 비중 등은 제3의 정당이 선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샤츠슈나이더가 이런 한국에서 있었다면 어떤 진단과 처방을 내놓았을까. 어느 학생과 그의 대화다.

"정치학자로서 자신이 개밋둑을 연구하는 곤충학자 같은 기분이 들지 않으세요?"

"아니. 그보다는 개밋둑을 연구하는 한 마리 개미 같은 기분이지."

민주주의에서, 정치학자든 보통 사람이든 '깨어 있는 시민'이든 정치인이든 모두가 똑같은 '개미'다. 다시 강조하지만 당신은 민주주의를 위해 태어나고 살아가지 않았다. 그 거꾸로다. 바쁘고 힘겨운 세상에 무엇을 함부로 요구하겠는가. 다만 자기 자신을 위해 활용할 그 '개밋둑'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고 이야기할 시간을 아주 가끔은 가져보자. 비록 자신의 생각이 정치로부터 떠나 있을 수밖에 없는 시간과 공간은 크지만, 자신이 비운 시간과 공간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샤츠슈나이더에 따르면 '정당')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Posted by 김수민

오늘 7월 31일은 프랑스의 정치인, 장 조레스의 기일입니다.

2009년 겨울에 썼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부당하게 고통 받는 '한 인간'을 위한 사회주의
프랑스 사회주의 통합의 지도자, <장 조레스 그의 삶>
 

"사회주의에 충실했기 때문에 암살당한 이의 권위를 사회주의에서 독점하려는 이 정치조작은 철저한 사회주의 배신행위."


한 프랑스 공산당 의원의 발언이다. '사회주의에서 독점'할 때의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사회민주주의'일 터이다. 이에 관해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지도자, 레옹 블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우리의 것이다. 그가 우리의 당이었고 우리의 사상이었고 우리의 교리였다."


양측의 발언은 장 조레스(1859~1914)를 둘러싼 것이다.(이 저서의 16쪽 참조) 사회주의 역사에서 사회당 계열과 공산당 계열이 다퉈가면서 함께 추모하는 인물은 흔치 않다. 한국의 여운형도 그러한 수준에는 오르지 못했다.

  
▲ 프랑스 사회주의의 지도자, 장 조레스(1859~1914). 팡테옹에 있는 그의 묘비에 적힌 문구는 유명하다. '인민의 호민관'.
장 조레스

장 조레스라는 이름은 한국에서는 낯설다. NL(민족해방)이나 PD(민중민주)와 같은 혁명주의에 가려진 탓일까. 10여년전 학위논문으로 <프랑스 노동계급을 위한 장 조레스의 사유와 실천(1885~1914)>을 제출한 노서경 박사가 외로이 분투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는 지난해 조레스의 글을 모은 <사회주의와 자유 외>(책세상)를 번역했고, 이어서 올해 <장 조레스 그의 삶>(당대)을 옮겼다. 원저자는 언론인이자 프랑스 학술원 회원으로 <나폴레옹>, <드골> 등을 저술하기도 했던 막스 갈로.

공화파 엘리트에서 노동계급의 대변자로 성장하다

장 조레스는 노동자 파업과 의회정치를 통한 개혁주의적 사회주의를 펼쳤다. 이러한 입장은 초창기에는 프랑스 사회주의정치세력의 주요노선으로 등극하지 못했다. 쥘 게드 등이 마르크스주의적인 혁명사상을 견지하고 있었던 데다가, 이미 생시몽, 푸리에 등이 주창한 공상적 사회주의, 프루동의 무정부주의의 전통도 있었다. 한편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정치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행동으로 세상을 뒤집는다는 혁명적 생디칼리즘이 번졌다. 조레스는 이러한 프랑스 사회주의의 역사에 지성적 사회주의,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를 불어넣은 장본인이다.

갈로의 본 저작은 조레스의 전 생애를 다루고 있고 그의 성장기도 상세히 기술되어 있어, 그가 지성인으로 자라난 과정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소년기의 조레스는 반항아가 아니라 모범생이었다. 성적이 뛰어나 장학생으로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교육 기회의 확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해군 제독인 친척 어른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국가적이고 정치적인 분야에 관심이 깊었고, 앙리 베르그송과 같은 쟁쟁한 동창들 사이에서 뛰어난 연설과 토론실력을 선보였다. 그는 엘리트이자 남부 지역의 촌사람으로서 처음에는 노동계급과 거리가 있었다. 사회주의파가 아닌 공화파에서 정치역정을 시작했던 때가 1884년, 그의 나이 25세였다.  

조레스의 미시적인 개인사에도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여성관, 연애관, 가족관에서만큼은(시골에서 태어나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이로서는 어쩌면 당연히) 점잖고 관습적이었다. 또 이 지적인 인물이 결투에 두 차례 연루되었던 것도 재미있다. 결투를 비롯한 당대 프랑스의 풍습를 엿볼 수 있는 참고문헌으로는 에드워드 베렌슨의 <카요 부인의 재판>(신성림 역, 동녘)이 있다. <장 조레스 그의 삶>의 후반부에 카요 부인의 남편 조제프 카요와 장 조레스가 맺는 연대 겸 긴장관계가 서술되어 있는 만큼, 두 책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처음 들어간 의회에서의 노력과 번민, 기득권세력의 반격에 밀려 패배한 두 번째 선거, 카르모 광부들의 파업에 연대했다가 광부들의 추천으로 보궐선거 당선, 그리고 현장 가담과 의정활동의 결합...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것은 바로 조레스가 사회주의자로 변모하는 과정이다. 낙선 뒤 파리고등사범에서 공부를 계속해며 연하의 스승 뤼시앙 에르를 만나 사회주의 이념을 익히고 그것을 프랑스적으로 소화하는 대목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인생 행로는 젊어서는 진보적인 게 자연스럽고 늙어서는 보수적인 게 당연하다는 통념에 저항한다. 인본주의와 공화주의, 개인주의를 지향한 그는, 약자를 억압하는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마치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닌 개인들의 민주주의 다수혁명

조레스는 끈질긴 보수파와 유약한 중도파에 대응해 좌파의 통합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 통합의 전제가 더 깊고도 새로운 원칙을 향한 혁신임을 독자들은 헤아려야 할 것이다. 그는 당시 프랑스 사회주의의 주류로서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가까웠던 게드파의 비난과 조롱에도 스스로의 개혁주의를 굽히지 않았다. 때문에 이웃나라 독일의 동지들인 베른슈타인, 카우츠키, 룩셈부르크 등에게 비판받았다. 조레스는 때에 따라 유연하게 중도 공화파와의 연합전술을 폈지만 그것은 철저히 공화국 수호라는 당위에 따라 이뤄졌으며 결코 빈자를 위한 강령을 꺾지 않았다. 

지난해 번역 출간된 <사회주의와 자유 외>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찾을 수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해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정지시킬 의사였다고 상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자체가 민주주의를 향한 광대한 운동으로부터 부상한 것인데 어떻게 그들이 그럴 수 있었겠는가?('방법론' 중에서)

사회주의는 논리적이고 완전한 개인주의이다. 그것은 개인주의를 확장함으로써 혁명적 개인주의로 이어간다.('사회주의와 자유' 중에서)

  
▲ <장 조레스 그의 삶> 막스 갈로 지음, 노서경 옮김.
ⓒ 당대
장 조레스

조레스의는 개인들이 민주주의를 토대로 자유롭게 구성한 '크나큰 다수'를 계급독재로 환원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한 인간이 부당한 고통을 받을 때 그가 부르조아일지라도 하나의 인간으로 봐야 한다는 개인주의자였다.

1914년 세상을 떠난 조레스는 파시즘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 그는 그러나 파시즘 이전의 반파시즘 지성인이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당대를 삼켜나가던 반유대주의에 반대했다. 게드를 비롯한 여러 사회주의자들이 '부르조아 내부의 사건'으로 치부하던 드레퓌스 사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군부재판의 비밀성부터 비판하며 신중히 접근하던 그는 드레퓌스의 무죄를 확신하고 반유대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하게 된다.


"매순간 조레스의 선택은 민주주의, 개인과 집단의 자유, 그가 공화국이라고 부른 것 편이었다."(<장 조레스 그의 삶>, 779쪽)

조레스가 '뉴라이트'가 되지 않은 까닭은?

슬슬 전운이 감돌던 시기 조레스는 반전평화론으로 인해 '친독일파'로 찍혀 애국주의자들의 표적이 된다. 뤼시앙 에르, 레옹 블룸 등과 함께 개혁주의 노선을 프랑스 사회주의의 주류로 올려놓고 나서도, 노동계급과 농민을 비롯한 대중의 칭송을 받고도, 고립과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이 책의 종반부는 전쟁을 막고자 동분서주하는 조레스의 마지막 나날을 담고 있다. 조레스는 프랑스혁명의 전통을 중시하며 프롤레타리아와 사회주의자에게도 조국이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애국자였다. 다만 그에게 애국은 반전평화였고, 자유와 평등의 한 수단이었기에, 그의 애국심은 애국주의와 부닥친다. 그리하여 1914년 7월, 죽음의 그림자가 그를 덮쳐온다. 

이 책에는 한국인 독자로서 특별히 곱씹을 만한 부분이 있다. 밀랑, 비비아니, 브리앙 등 예전 조레스의 동지들은 중도파가 주도하는 내각에 들어가면서 훼절하고 만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게드조차 조레스 사후 전쟁이 터졌을 적 비상내각에 입각했고, 혁명적 생디칼리스트였던 에르베는 조레스의 죽음을 '국가 방어'의 소재로 쓰면서 광신적 애국주의자로 돌변했다. 극좌에서 극우로 전향한 오늘날 한국의 어떤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특히 '뉴라이트'가 오버랩된다.

그렇다면, 조레스는 왜 여러 방향에서 숱한 공격을 받았음에도 발길을 흐트러뜨리지 않았고, 자신의 목숨을 걸며 공화국의 양심, 사회주의의 표상으로 남았는가? 아마 이 질문에 관한 답이 이 책에서 읽어낼 가장 커다란 의미일 것이다.  

Posted by 김수민

여기, 카드 넉 장이 있고 그 카드마다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E        K        4        7

 

 

 

카드의 한 면에 모음이 적혀 있으면, 그 뒷면에는 짝수가 적혀 있다고 한다. 이 규칙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우리가 반드시 뒤집어봐야 하는 카드들은 다음 중 어느 것일까? 이는 <바른 마음>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가 소개한 웨이슨의 네 장의 카드 과제라는 논리 문제인데, 정답은 이 글의 맨 밑에서 공개하겠다.

 

 

 

<바른 마음>은 심리학과 정치학의 가교를 놓고 있다. 저자 조너선 하이트가 사는 미국정치가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양분되어 있다면, 한국은 소위 진보 또는 개혁과 보수로 나뉘어져 있다. 한국의 보수가 진정한 보수인지 진보(개혁)이 과연 얼마나 진보(개혁)인지 의문의 여지는 매우 크나, 미국과 비슷한 구도로 짜여져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둘은 도무지 서로를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면 자신이 보기에 상대방은 옳지 않음은 물론 옳음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옳은데 그들은 왜 틀린가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나는 이른바 진보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인간성과 도덕성에서 큰 차이가 없다. 만일 깨어있는 시민들이 여기는 것처럼 무지몽매하게 잠든 시민이 한국 정치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다면 이 사회는 벌써 무너졌을 테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불의에 분노하는, 불의에 항거하지는 못해도 가담하지 않는, 불의에 가담하더라도 모든 면에서 불의를 저지르려고 노력하지는 않는 사람들을 수없이 바라보고 겪는다.

 

 

 

<바른 마음>의 부제는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이다. 소신을 지니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자신의 소신은 옳고 그와 반대되는 것이 그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상대방 혹은 적을 “올바른 삶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양 규정하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으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나는 한국의 소위 진보개혁파 중에서도 소수파에 해당하며, 그 덕분인지 한국의 자칭 진보가 자칭 보수보다 도덕적이기는커녕 딱히 논리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역사왜곡은 소위 수구보수세력이 다 저지르는 것 같지만, 자칭 진보파 중 일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실제로는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보수 정부로서 반-서민적 정책을 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모른체하거나 은폐하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두둔하다가 궁지에 몰렸을 때 나오는 이야기는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최후 무기와 동일하다: “시대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 개발독재의 후예와 신자유주의의 후예를 지지한 사람의 총합은 무려 99.6%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99.6%중 상당수도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같은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고 있고,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이들은 사회에 큰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바른 마음의 보유자이다. 우리는 이제 자신과 다른 정치 성향의 사람들이 '왜,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직관에 안 맞으면 어떤 지적도 불통... 코끼리가 먼저다!

 

 

 

인간은 우선 판단부터 내리고 나서 그 근거들을 하나둘씩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렇대 댄 근거라는 것도 실상은 사후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바른 마음>이 펼치는 심리학적 전제다. 하이트는 버지니아 대학에 재직하며 여러가지 실험을 했다. 한 번은 어느 남매의 근친상간 줄거리를 들려주고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책의 92~93쪽에 실린 대화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못이다. 내가 종교에 독실한 사람이라 그렇다.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잘못이다.”

-어디가 잘못인가?

근친상간 개념 전부. 근친상간으로 임신하면 대부분 아이가 기형이 된다.”

-이들은 콘돔과 피임약을 사용했다.

아 그렇군. 그랬다고 했지. 그냥 그렇게 하는 건 잘못이다.”

-나는 당신이 그것을 왜 잘못이라고, 무엇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지 알아내려고 한다.

가만있자, 생각 좀 해보자. , 그 둘이 나이가 얼마나 되나?”

-스무살 정도다.

나 이거 참(낙심한 표정으로) 잘 모르겠다. 난 그냥... ... 우리는 그렇게 배우며 자라지 않았다. 용납이 안 된다.”

-용납 안 될 일이라고 다 잘못이라고 할 순 없지 않나? 여자들이 취직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고 치자. 그때도 여자들이 취직하는 게 잘못이라고 할 텐가?

아이고 이거 어렵네. 뭐라고 얘기해도 내 맘은 바뀌지 않을 거다. 둘의 행동은 그저 미친 짓이다."

 

 

 

한편, 근거를 찾기 이전에 이미 형성된 도덕성은 선천성과 사회적 학습의 조합이다. 하이트는 말한다.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인 추론은 그 다음이다.” 하이트는 인간의 자동적인 인지과정이 코끼리라면, ‘통제된 인지과정은 그 등에 올라탄 기수이자 코끼리의 시중을 들어주는 하인이라고 비유한다. 이것이 이 책의 제1의 주요 비유이다.

 

 

 

도덕적 사고는 진실을 찾는 과학자보다 표를 잡으려는 정치인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강박적으로 염려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자동적으로 정당화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직관에 어긋나는 지적을 받았을 때는 이성적으로 이를 따져보고 수용하기보다는 전력을 다해 빠져나가려 한다(가령, 문재인 지지자는 때때로 박근혜 지지자들이 친일과 독재로 점철된 현대사의 진실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광신적 인간이라고 여기지만, 문재인 지지자들중 일부는 노무현의 한미FTA와 이명박의 한미FTA는 다르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달고 살고 있다. 사실 이런 태도는 누구나가 가지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하고 제 잘못을 합리화하는 것이 사람이다). 따라서 하이트는 기수보다 코끼리를 먼저 설득하라고 조언한다.

 

 

 

여섯 가지 미각을 이해하지 못한 정치는 패배한다

 

 

 

진보파가 보수파에게 지는 이유도 인간의 직관을 하찮게 여기는 데서 나온다. 하이트는 서양적(W)이고 고학력(E)이고 산업화(I)되고 부유(R)하고 민주(D)적인 특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세상을 관계보다 개별 사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WEIRD’권 문화는 도덕을 대체로 자율성의 윤리와 연관 짓는다고 설명한다. 진보파의 문화라고 할 수도 있는 WEIRD권 문화에서, 체계화 능력은 높으나 공감 능력은 낮게 나타나고, 세상을 관계보다는 개별 사물들의 집합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기도 하다.

 

 

 

하이트는 그러나 자율성의 윤리 이외에도 <배려, 공평성, 충성심, 권위, 고귀함>이라는 여러 가치를 거론하며 바른 마음은 마치 여섯 가지 미각 수용체를 지닌 혀와 같다고 제2의 주요 비유를 든다. 이와 같은 도덕성 기반은 인류의 오랜 경험이자 각 개인이 경험하기 이전에 구조화된 선천성을 통해 주어져 있다. 하이트가 도덕성의 기반과 인간의 적응 도전 과제를 짝지은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배려/피해 기반 - 무력한 아이들을 돌보는 과제

(2) 공평성/부정 기반 - 협동으로 보상을 얻되 착취는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과제

(3) 충성심/배신 기반 - 연합을 구성하고 유지할 과제

(4) 권위/전복 기반 - 위계 서열 내에서 관계를 구축해 이득을 챙겨야 할 과제

(5) 고귀함/추함 기반 - 잡식동물의 딜레마+병원체 및 기생충이 득실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과제

 

 

 

미국이나 한국이나 시골 주민과 노동자 다수가 공화당-새누리당에 표를 던진다. 이에 대해 미국 민주당이나 한국의 진보파 시민들은 보수세력의 농간에 넘어가서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배신한다고 비아냥거리지만, 하이트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시골 주민과 노동자들은 위와 같은 도덕성 기반과 도덕적 이해에 따라보수정당에 투표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의 진보파가 농민, 노동자의 표를 받지 못하는 이유, 못 받고도 이유를 엄한 데로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한 팀으로 뭉치는 대신 자신()만의 도덕 매트릭스에 갇힌다. 주지하다시피 진보파와 보수파는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하이트는 진보파가 보수파보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능력이 더 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도덕성 기반들에 대한 이해가 보수파보다 더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아마도 그 몰이해의 중심에는 인간의 집단주의적 성질에 대한 몰이해가 있을 것이다.

 

 

 

하이트는 인간의 본성은 90퍼센트는 침팬지, 나머지 10퍼센트는 벌과 같다는 제3의 주요 비유를 내보내고, 인간은 이기적인 영장인 동시에 자신을 뛰어넘는 크고 고결한 존재의 일부가 되려는 열망을 갖고 있음을 진화학, 인류학을 동원해 입증한다. 하이트처럼 연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이 점을 경험하거나 목도한다. 축구 경기장, 락 콘서트, 레이브 파티에서 말이다. 이런 마음은 사람들의 집합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외에서도 드러난다. 종교도 그렇다. 종교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초월하면서 무리 지어 한 팀으로 뭉치고자 하는 인간의 성질과 능력에서 비롯된다는 게 하이트의 논리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성향을 비판하고 이를 뒤집으려는 것도 어렵고, 그런 성향에 대한 고려나 호소 없이 지지를 확보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노릇이다. 

 

이해 힘든 상대방의 성향도 '바른 마음'의 발로

 

근래 한국 정치권에는 제사장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박통진리교노빠니 하는 단어들이 그 단서다. 나로서는 기가 막히다 못해 기가 질리는 퇴행적 정치현상이다. 그러나 그런 종교적 정치 또한 인간 본성의 발로이자 바른 마음을 갖고자 하는 노력의 흔적일 수 있다. 또한 나의 마음이라고 해서 그런 일면이 없을까? 나는 마음을 터놓고, 가능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며, 나 자신 또한 체계적 추론 이전에 이미 유전자 발현과 편견과 오래 전의 경험으로 뒤섞인 이미 내려진 결론을 따르는 인간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녹색정치도 배려나 공평성 뿐만 아니라 (자연에 관련된) 충성심, 권위, 고귀함과 종교에 이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활용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어차피 한동안은 이 땅에 다 같이 발붙이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서로 잘 지낼 수 있게 함께 노력해보자.”(하이트가 글을 마치며 쓴 문장)

 

 

 

글 초반에 나온 문제의 답은 [E][7]이다. [E]까지는 많이들 맞혔을 텐데 [7]이 아니라 [4]라고 우기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이 우기기에 보수파와 진보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닐 듯하다. 내 글을 스쳐가며 읽은 사람 중에는 -자칭 진보파 중의 일부를 욕한 구절만을 읽고- 내가 보수파라고 어처구니 없이 우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기시라. 다만 그 우김을 가끔은 돌아보거나 쏘아보시라. 그것이 인간의 본성, 당신의 코끼리니까           

Posted by 김수민

예상대로 새누리당이 이겼다. 다만 몇가지 의외가 있었다. 김태환 의원이 공천을 받은 것이 그중 하나다. 경상북도 국회의원 가운데 물갈이 여론이 최상위에 해당하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미 타격을 받은 바 있었다. 그가 공천을 받은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그만한 중량감을 보유한 인물이 공천 경쟁자 중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이 선거가 박근혜의 선거였던 탓이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친박 무소속으로 4년 전 당선되었던 김태환 의원은 박근혜에게 필요한 장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구미 지역 의원 두 명을 모두를 지켜주지는 않았다. 을 지역 김태환 의원보다 더 인기 없다던 갑 지역 김성조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지 않았다. 이 역시 박근혜의 힘이다. 그가 김성조를 주저 앉힌 마지막 힘이다. 

 

갑 지역의 새로운 의원이 될 심학봉 당선자는 '포항 출신 친이 인사'라며 집중 포화를 맞았다. 구미에서 현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임을 감안하면 그는 4년 전 을 지역에 출마한 한나라당 이재순처럼 낙선하기 쉬웠다. 그러나 그 또한 '박근혜의 후보'였다. 김성조 의원의 저조한 지지율도 역으로 심 당선자를 치켜 세웠다.

 

새누리당과 친박연합, 무소속에 걸쳐 수두룩하게 존재하던 토착민 후보들이 정리되고 마지막으로 남은 김석호 친박연합 후보는 아예 '친박 구미 사람 vs. 친이 포항 사람'이라는 저열한 구도에 의존했다. 친박연합과 박근혜 사이에 별 관계가 없음은 뒤로 돌리자. 이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추한 풍경이었다. 연고주의의 극치이면서,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외지 출신을 왕따시키는 패착이었다. 포항 출신 뿐 아니라 충청, 호남, PK 등지에서 온 시민들을 되레 심학봉 후보로 몰아주는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갑 지역 친박연합 김석호 후보는 20퍼센트에 못 미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재작년 지방선거에서 3할을 넘어서며 올리던 기세가 꺾여 버렸다. 박근혜와 연관이 없으면서도 '박정희'를 내세우던 친박연합은 당 전체의 등록취소를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진보적 군소정당들의 등록취소와 매우 다르다. 기묘한 틈새시장 공략의 파탄이다. 친박연합은 야권이라 볼 수 없고, 내용적으로 새누리당과 별다른 차별점이 없다. 박정희-박근혜 마케팅으로 살 길을 찾아왔을 뿐이다. 이제 먹히지 않는다. 친박연대든 친박연합이든 박근혜가 새누리당에서 주변화될 때에나 짭짤한 재미를 본다. 그러나 박정희의 딸은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 주자다.

 

한나라당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도전해 도의원직을 따낸 전인철 후보는 중도 하차했다. 도의원 사퇴와 무소속 출마 선언, 새누리당 공천 신청을 거쳐, 예전 전 후보를 공천 탈락시켰고 이번에는 자신이 떨어진 김성조 의원을 지지하기까지 숨가쁜 행보를 이어갔지만, 중도 하차한 보람도 없이 김 의원은 선거를 포기했다.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도의원이 된 을 지역 김대호 후보도 총선에 뛰어들었다 쓴잔을 마셨다. 그는 선산 지역에서 30퍼센트를 올렸지만 그쪽은 그의 최대 지지기반이었다. 갑 지역 무소속 김성식, 신수식 후보, 을 지역 친박연합 박대식 후보, 새누리당 공천탈락자인 김연호, 허성우 후보 모두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새누리당 언저리'의 몰락이었다.

 

야권은? 갑에서든 을에서든 이기리라고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전'할 수 있다는 예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있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파악된 바로 구미 지역의 야권 표심은 최소 25퍼센트였다. 이번에는? 정당명부 지지율을 떠나, 후보자별 득표만 보면 암담하다. 갑 지역은 민주통합당 안장환 후보가 12퍼센트, 통합진보당 구민회 후보가 4퍼센트를 얻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일단 후보단일화에 실패했다. 후보단일화를 거부한 건 민주당측이다. 이제, 더욱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더 득표력이 높은 후보가 단일화를 거부했다. 안후보측 주장은 간단하다. 한마디로 "독자노선"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결기는 뒷켠에서까지 유지되지는 않았다. 선거 막판 단일화 제의를 했다고 한다. 간단한 셈법이다. 12에 4를 더하면? 참고로, 15퍼센트 이상의 득표율을 올리면 보전 항목에 해당하는 선거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다. 

 

대구 중남구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야권 무소속 이재용 후보와 단일화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민주당 후보가 득표력이 더 낮았다는 게 다르긴 하다. 하지만 구미 갑과 대구 중남구의 민주당 후보 사이에서 또렷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도저히 중간에 끌 수 없는 완주의 의지! 주변의 평자들은 말한다. 선거 출마를 치적으로 삼아 정권교체시 논공행상을 하기 위함이라고. 예전 TK 실세로 불려지던 한 인사가 배후로 거론되기도 한다. 따지자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후보단일화는 지상명제가 아니다. 나부터가 단지 새누리당을 이기려는 목적으로 치우쳐진 단일화에 대해서는 반대해 왔다. 단, 단일화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독자 완주의 이념적 명분이 있었는지는 따로 평가할 부분이다.

 

여하튼 단일화 실패는 차치하고 갑 지역 두 야권 후보의 성적은 따로 놓고 보든 합쳐서 보든 나쁘다. 통진당 후보는 자당 지지자들을 민주당 후보에게 내줬고, 민주당 후보는 야권 지지세를 모으기도 버거웠다. 예컨대 과천 의왕 민주당 후보였던 송호창 변호사 비슷한 후보가 나와도 그랬을까? 두 후보에게서는 무게감까지는 아니더라도 혁신적 패기를 맡기 힘들었다. 지치고 억눌린 야권 유권자들을 다독이고 분노를 분출시키는 대리인이 될 수 없었단 말이다.

 

그래도 을 지역의 통진당 이지애 후보는 갑 지역 후보와는 사뭇 다르게 선거를 마무리했다. 16퍼센트의 득표율. 뜯어보면 이것도 야권 지지자들을 충분히 규합했다기에는 너무 불충분하다. 역대 구미에서 출마한 진보적 총선 후보 가운데 가장 높은 득표율이라는 의미는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을 지역에는 농촌 뿐만 아니라 신도심인 강동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젊은 유권자, 외지 출신 유권자의 비율이 구미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이지애 후보는 강동 지역의 각 행정동에서 21~30퍼센트를 득표했다. 구미 지역 야권 후보로서는 대단히 높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재작년 지방선거 도의원 정당명부 분야에서 야권 도합 40퍼센트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올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후보는 예비선거운동 없이 곧바로 본선거에 돌입했다. 돌입과 동시에 야권 지지자들이 얼마간 결집했지만 시간이 짧았다. 꼴찌와 꼴지에서 2위를 차지한 허성우, 김연호 후보가 낯짝에 철판을 깔고 문자메시지를 통해 '자신이 2위'라는 식으로 선전한 것을 감당하는 데도 여력이 부족했다. 이 후보는 2위 후보였지만 '2위가 예상되는 후보'가 아니었다. 불과 서른살의 젊은 나이가 원인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30~40퍼센트의 득표를 못 올린 원인일 따름이지, 새누리당 언저리 후보들의 득표 총합보다 낮은 득표를 한 원인은 아니다. 결국 가장 아쉬운 점은 '늦은 출마'였다. 

 

갑 지역 안 후보는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인사도 아니고, 지방의원을 거친 경력도 없고, 재야에서 모종의 감동적 정치를 한 실력도 없었다. 구 후보도 정치 늦깎이인 데다가 통진당 입당 시점이 늦었으며, 이 후보도 출마가 늦었다. 이번 총선이 구미 지역 야권에게 안기는 교훈은 단순하다. '인물'과 '시간'. 실은 이에 비해 구미 지역의 야당 지지율은 높은 편이다. 그 지지율로 새누리당을 이긴다는 건 우습지만, 선전이라도 하려면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한 인물은 조직과 일상 활동이 키우는 법이다. 현재까지 구미의 야권 시민들은 서로 모이는 데 그치거나 자족적인 움직임만을 나타내 왔다. 이대로 가면 다음 지방선거도 어렵다. 혹독한 자평과 성찰이 절실하다.

 

남유진 시장과 함께 심학봉 당선자, 김태환 국회의원의 삼각구도는 구미를 어떻게 그려나갈까? 두 당선자의 선거 태도를 보면, 이들이 국회의원인지 시장인지 아니면 토목업자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아, 이렇게만 말하면 토목업계에 실례가 될 것이다. 토목을 위한 토목에 혈안이 된 토목업자라고 해야 할까. 심 당선자는 박근혜에게 구애하려는 목적에서였는지 '박정희 컨벤션센터 50층'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 의원의 구역별 '생활밀착 공약'도 '건설밀착 공약', '민생복지를 가로막는 밀착마크 공약'에 그쳤다. 구미 지역 시민사회나 야권이 더욱 분발해야 할 이유다. 밀착마크부터 지역방어에 역공까지 철저해야 한다.

 

물론, 아직 임기가 개시되지 않은 만큼 지역 유권자로서 그래도 희망은 가져봐야 할 것 같다. 오늘 구미시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인 낙동강변 수상비행장, 골프장 건설에 대해 두 당선자는 신중히 말하거나 또는 반대했다. 시민들은 결코 예전처럼 토건개발에 호의적이지 않고, 당선자들의 일면은 그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복지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거나 기업이 살려면 비정규직을 양산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언제까지 그 수준이라도 지킬 수 있을지, 정책 실천은 어떠할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Posted by 김수민

구미 지역은 예상대로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 당선되었습니다.

그 속에 구미 을 지역 야권단일후보의 선전이 있었습니다.

이 후보의 인동동 진미동 득표율은

제가 지난 지방선거 때 얻은 득표율보다 높습니다.

조금씩 약진하고 있습니다.

 

그 약진의 속도가 아쉽고 못미더우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감히 말씀드리자면

구미 지역에서 변화와 혁신의 이 길은 대장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제가 소속된 녹색당은 0.5퍼센트에 못 미치는 10만표를 얻었습니다.

창당 한달만에, 여러 정당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든 선거를 했습니다.

2% 지지율에 미달해 당을 해산하고 다시 창당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당원 누구도 주눅들지 않고 10만의 녹색 씨앗에서

이제 싹을 틔우기 위해 더욱 분발하는 상황입니다.

 

제가 무소속으로 있으면서 야권+알파로 큰 권력을 잡기를 바라는 분도 계십니다.

아니면 녹색당보다는 더 큰 야권 정당에 합류해서 안정적인 소수파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분도 계십니다.

전자는 주로 제가 국회의원이나 시장이 되기를 바라는 분들이고

후자는 제가 가뿐히 재선하기를 바라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시의원, 이 자리만 해도 제 평생에 있을 거라고 옛날엔 생각하지 않았던 자리입니다.

제가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에서 투표한 후보자들 중에 15%를 넘긴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지난해 제가 당선되기 전까지 말입니다.

 

생태 파괴와 노동 탄압에 저항하는 투쟁의 길을 공직을 향한 욕구가 가로막을 순 없습니다.

그대로 가겠습니다.

제가 속한 당파의 지지율이 3프로, 아니 0.3프로가 되더라도 저는 저의 길을 가겠습니다.

투쟁의 길을 가겠습니다.

 

단순한 권력의 교체에 몰입하지 않고,

평등과 생태적 가치를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

승패와 다소를 뛰어넘어 존재 자체로 대안이 되겠습니다.

 

사회운동을 하고 정치를 한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단 한번 뿐입니다.  

 

남은 저의 임기 2년,

재선을 준비하는 기간이 아니라,

시장이나 국회의원을 준비하는 모색기가 아니라,

 

생태 파괴

악덕 자본

구태 행정

토건족 투기족

어용노조

일당 독재

에 앞장서 맞서 싸우며

이정표를 세우는 시기로 만들겠습니다.

 

구미 정치는 아직은 희생자를 필요로 합니다.

제가 그것을 맡겠습니다.

 

Posted by 김수민
프랑스에서 진보좌파적 논조를 띠는 대표적인 언론으로 <르몽드>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월간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펴내고 있으며
한국판도 간행 중에 있습니다.

12월호에 저의 글 '박원순 시장, 스펙정치의 도래'가 실렸습니다.
후보 시절의 유약함을 벗어난 박원순 시장이 현재와 미래에
여러가지 개혁, 진보 정책을 쓰고 '성공한 시장'이 되어가겠지만
그럴수록 정치다양성을 무시한 야권통합은 더 가속이 붙고
안철수나 박원순처럼 '스펙'이 좋은 인물중심의 정치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독자적 좌파와 녹색파의 입지는 힘들어진다는 걱정과 함께
더 과감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는 제언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원고 전문을 공개하겠습니다.


Posted by 김수민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2718 



"구미, 감당키 힘든 일이 터질지도 몰라?"
[청년유니온을 말함⑨] "난 진보 무소속 기초의원, 청년유니온 조합원"

지역구 사무실로 쓰는 ‘풀뿌리 사랑방’을 드나드는 탈학교 청소년이 있다. 이름하여 '간꽁취' 보좌관. 개콘 간꽁치 트레이너의 후계자로, 스탬프를 완력기 다루듯 하고, 사무실 셔터를 내릴 땐 매달리다시피 한다.

간꽁취 보좌관

그는 학교 폭력에서 놓여난 대신 무료함과 그에 따른 우울함을 얻었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탈학교 청소년들을 찾아다니더니 몇몇과 면담을 하고 왔다. “또래끼리 편하게 만나”라는(청년유니온 정신과도 통하는?) 취지에서 나는 가지 않았고, 다녀온 간꽁취는 만난이들 대다수의 공통점을 전했다.

첫째, 낯을 가린다. 내가 일단 빠지길 잘했다 싶었다. 둘째, 다들 내 지역구에 산다. 아직 통계는 없지만, 아무래도 탈학교 청소년이 내 지역구에 많은 것 같다. 셋째, 검정고시를 공부하는 간꽁취와는 달리, 그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하고 있다.

우리는 간꽁취가 가입한 청소년 인권행동 단체나 내가 속한 민주노총 경북지역 일반노조가 탈학교 청소년 노동문제에 접근하기에는 너무 큰 곡괭이라고 판단 내렸고, 4월 둘이 함께 청년유니온이라는 낫과 망치(?), 호미를 들었다. 나는 “청년유니온은 이런저런 사업을 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청년유니온은 탈학교 청소년의 노동 사각지대로!”라고 외칠 의사가 없다. “말 꺼낸 놈이 임자”고, 내가 청년유니온이니까 어차피 자급자족해야 한다.

말 꺼내고 임자가 되어버린 청년유니온 구미모임의 사업은 현재 걸음마도 아니고, 짚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단계다. 우리가 파악하기로 구미 지역 청년유니온 조합원은 4명인데, 이들은 교육희망네트워크 준비 모임에 가도 똑같이 만난다.

아니 좀 더 솔직해지자. 조합원 죄다 풀뿌리사랑방 식구들이다. 조합원 수는 둘째 문제고, 우리는 이후 지금껏 더 이상의 탈학교 청소년들을 만날 수 없었다. 간꽁취가 이미 만났던 이들도 기약이 없다. 덕분에 간꽁취는 툭하면 우울하다고 낑낑대고, 밥 먹는 도중에 팔뚝질을 하는 등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스러운 증상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진보와 좌파는 촌스러워서 실패했나?

간꽁취와 함께 동네를 다니다 ‘노는 아이들’을 스쳐 지났다. “야, 너도 저기 끼어서 같이 놀지. 너랑 놀아주느라 내가 더 우울해.” “그러고 싶은데요. 끼워주지를 않는다니까요.” 간꽁취가 거기 끼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을지 모르겠지만, 노력하기부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대로의 문화가 있다. 척력이 상당한. 그런데 말이다. 이거, ‘우리’도 그렇지 않나? 그 아이들이 우리 노는 데 끼려면 쉬 낄 수 있나?

“어이 간보좌, 밥 먹다 말고 자꾸 팔뚝질할래? 짜증난다니까.” “재밌잖아요.” “너 그렇게 살면 니 자식들은 절대로 진보운동 안 해. 진보는 미친 놈인 줄 알고.” “하아, 우울해서 이런다니까요.” “지금 널 보는 내가 더 우울한데, 옛날에 조지 오웰이 뭐라 그랬는지 아냐?” “예? 뭘 조진다고요?” “사회주의자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괴짜들이 불길할 정도로 많다.” “(입안의 밥풀을 선보이며)ㅋㅋㅋ”

“사람들은 흔히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는 말 자체가 영국의 온갖 과일주스 애호가나 나체주의자, 샌들 이용자, 섹스광, 퀘이커교도, '자연 치유' 사기꾼, 평화주의자, 여성주의자를 다 끌어들이는 자력을 지녔다는 인상을 받는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

여기서 사기꾼 정도를 빼면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괴짜는 절대 나쁜 게 아니다. 세상에는 더 많은 괴짜가 필요하고, 모두가 알고 보면 괴짜다. 문제는, 괴짜들이 개성은 자기네만 가진 양 유독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대중들에게 잘 보이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의 적잖은 수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강남 좌파’니 ‘간지 좌파’니 ‘패션 좌파’니 하는 흰소리들이 바로 그 산물이다. 진보가, 좌파가, 노동운동이 구리고 촌스러워서 실패했나? 이런, 지금 돌아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잖아?

공산주의와 가톨릭주의의 비슷한 점

그러나 폭풍간지를 뽐낸다고 해서 다른 지점에 닿지는 않는다. 그래봐야 “사람들은 흔히 '진보'나 '좌파'라는 말 자체가 연예인이 되기에는 좀 어정쩡하게 멋있고, 대신에 책 좀 읽고 말 좀 시크하게 던지며 잘난 체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얼마 전에 어떤 시민운동가는 “아이들 교육 잘 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야 사회가 진보한다.”고 했단다. 갑자기 또 조지 오웰이 툭 튀어나온다. “공산주의와 가톨릭주의가 비슷한 점 하나는 '배운' 사람들만이 완전한 정통파라는 사실이다. (...) 이런 사람들이 정말 흥미로운 점은, 정통이다 싶은 것을 실생활과는 전혀 무관해질 정도로 밀고 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분들의 진보정당 혹은 진보 정부가 들어선 세상은 어떨까? 잘나고 뺀질한 진보는 언제나 촌놈 보수주의의 반란(“잘 났어 정말!”)과 짝패를 이룬다. 폭풍간지 앞에 모두가 무릎 꿇고 하악거릴 거라는 낙관은 버려라. 이 반란의 주력군에는 노동자와 청년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진보’가 허약하거나 밉살스럽다고 느껴지는 욕망의 중산층, 진보의 반란을 반대편의 반란으로 막고자 하는 기득권층의 의도가 마구 섞여들면 그 유명한 파시즘, 그분이 오시는 것이다.

   
  ▲구미공단 전경.(사진=구미시청 홈페이지) 

‘간지’와는 무관한 자신에게 일단은 안도한다. 나는 구미에 살고 있다.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인 도시다. 그 안에서도 내 지역구가 가장 젊다. 대학 주변이냐고? 아니다. 일부 학생운동가들이 그토록 동경하는 ‘대공장’과 그가 거느리고 지배하는 하청업체들이 들어서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젊은 생산직 노동자들이 밤에는 술집을 채우고, 아침에는 밤샘 근무를 마친 뒤 고기를 구워먹으며 소주잔을 털어 비운다.

이들은 정주의식이 희박한 동시에 어쨌든 수가 많아 지방선거 투표율을 30%쯤으로 주저앉히곤 한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젊은 나이에 출마한 나는 지난해 선거 기간 내내 이들 앞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나를 놀라게 만든 노동자들의 말

(나와 아주 다르고 자신만만한) 간지 좌파라도, 어차피 정우성처럼 생기지 않은 이상 우리 동네 명물 S모 나이트에서도 안 먹히고, 잘못 까불면 ‘재수 없다’는 반응만 자아낼 것이다. 선거 때도 잘난 체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고, 여전히 우리 동네 청년 노동자들 앞에서 가장 조심스럽다.

이쯤에서, 간꽁취의 고민에 이어 나의 걱정을 털어놓을 차례다. 나는 이 동네에 입주한 사업장에서, 그러니까 청년 노동자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터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별다른 징후도 없고 내가 예감이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만일 일이 터진다면 틀림없이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일 것 같다.

나는 우리 동네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에게서 좋은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을 엿본 적이 없다. 작년 선거에서 만난 두 여성 노동자는 “이명박은 싫은데, 박근혜는 좋은 사람 아닌가요?” “경북은 그래도 한나라당 아닌가요?”하며 조심스레 묻다가 다음의 말로 날 소스라치게 했다.

“우리 나라가 삼성공화국이잖아요. 하지만 정작 우린 그 나라 국민이 아닌 거 같아요.” 그들은 왜 아침에 찌개도 국밥도 아닌 고기를 먹는가? “안 그럼 다음에 일할 때 서서 버티기 힘들어요.” 서 있는 게 힘든 정도가 아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발표한 백혈병 환자 가운데는 우리 동네에서 일했던 분도 있다.

이런 청년 노동자들은 무노조경영이나 어용노조를 이용한 노동자 통제로 인해, 자신을 대변할 노조를 갖고 있지 못하다. 공장 바깥과의 연결고리를 잡기도 버겁다. 아무리 지역의 상징처럼 우뚝 선 기업이라도 그 현장과 ‘풀뿌리’ 사이의 괴리는 심각하다.

나는 최전선에 선 기분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단 법은 없다. “평범한 노동자에게, 이를테면 토요일 밤 아무 선술집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유형에게, 사회주의는 더 많은 임금과 더 짧은 노동 시간과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사람이 없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 가끔 술집과 식당에서 주워듣는 회사에 대한 불평과 불만들은 항상 투쟁의 잠재적 자양분이다.

아마 바람은, 불게 된다면 당분간은 개별적이고 산발적으로 불 것이다. 민주노조의 깃발이 펄럭이기 전에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눕게 될 것이다. 우선 노동3권보다는 ‘최소한의 인권’이 더 크게 메아리칠지도 모른다. 나는 이 경우 청년유니온의, 시의원인 나의, 조합원 한명이 시의원인 청년유니온 구미모임의 역할이 당장에는 다른 어떤 노조보다 훨씬 중대할 공산이 높을 거라고 감을 잡고 있다. 남들이야 내 감을 믿어야 할 이유가 없겠지만, 나로서는 졸지에 최전선에 서버린 기분이다. 

“노동 계급 '출신'이면서 이론적이고 딱딱한 문어를 구사하는 유형도 많은 게 사실이다. (...) 즉, 문단의 인텔리가 되어 중산층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유형이거나, 노동당 하원의원 또는 고위 노조 간부가 되는 유형인 것이다. 이 마지막 유형은 세상에 비할 데가 없는 꼴불견이다. 그는 정작 자기 동료들을 위해 싸우라고 선출됐지만, 그 자리는 그에게 오로지 편안한 일자리와 신분 '향상'의 기회일 뿐이다.”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하원의원은 아니지만, 기초의원도 충분히 오웰의 타겟이 될 만하다. 나는 세상에 비할 데가 없는 꼴불견이 되고 싶지는 않다. 임기 끝나면 짤리는 기간제 노동자로서, 치안 불안과 쓰레기로 골치 앓는 원룸 밀집구역의 청년답게 주제 파악하며 살아가련다.

오웰이 읊조리던 “평범하고 수수한 사람”을 위한 조직과 활동만이 내게 ‘이론적이고 딱딱한 문어’ 틈에서 또는 속에서 도대체 실질적으로 뭘 해냈는지 늘 의심스러웠던 내게 편안한 자리와 삶의 향상의 기회를 줄 뿐이다. 

평범하고 수수한 사람들을 위한 조직

청년유니온에게 거는 기대도 그렇다. 청년유니온은 최소한 “인텔리가 되어 중산층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유형”은 아니겠지. “정통이다 싶은 것을 실생활과는 전혀 무관해질 정도로 밀고 나”가지는 않겠지. 나는 청년유니온 조합원의 절대 다수를 모른다. 하지만 유니온이라면 그러하지,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난 정말 환상도 관성도 없는 그런 ‘대중운동’을 해보고 싶다.

어느 날 간꽁취가 털어놓은 사연이다. “어느 게시판에 ‘누가 어제 한국팀 축구 경기를 재밌게 봤다’는 글이 올라왔거든요. 그러면 그냥 ‘아 축구를 좋아하시나 보군요’하면 그만인 걸 꼭 ‘그런 국가주의는 싫다’고 댓글 다는 사람이 있어요. 진짜 그렇게밖에 생각 못 하는지.”

“그래?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 “명색이 대학생이라는 활동가가요.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꼭 그렇게 써먹어야 직성이 풀리나.” “이야, 난 오히려 네가 국가주의 운운할 줄 알았는데. 나도 옛날에 딱히 그보다 나을 게 없었거든. 네가 그보다, 나보다 훨씬 낫구나.”

우리 청년유니온 구미 모임은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는 평범하고 수수한 사람들을 기다리며, 우리와 맞먹게 될 사람들과 맞먹는 사람이 되기 위해, 속을 채우기에 바쁘면서도 비울 것은 비우려 애쓰고 있다. 

추신: “아예 한 일주일 쉬다 가고 싶더라~^^ 너 일하는 것도 더 구경하면서...” 간꽁취의 연락을 받고 구미에 내려왔던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이 상경하면서 내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민주노동당과 그냥 합치다니

그는 나와 예전 <유뉴스>라는 매체에서 함께했다. 앞으로도 같이 어깨를 걸었으면 좋겠다. <유뉴스>가 문을 닫고, 내가 2008년 1월 민주노동당을 나가면서 한동안 같은 단체에 몸담지 못했다. 청년유니온 덕에 다시 뭉쳤다. 

얼마 전 진보신당의 노회찬 전 대표가 강물과 바다를 이야기하며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통합을 역설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오아시스에 안주하지 말고 강물이 되어 흐르자.”, “진보정치의 바다에서 만나자.”는 말을 하기도 했던 나는 참 못마땅하다.

   
  ▲필자.(사진=김수민 의원실) 

강물은 제대로 흘러본 적도 없고, 물결도 소금기도 없는 저수지를 바다라고 가리키고 있는 것만 같다. 진보신당 안에서도 틀어져 나온 마당에 민주노동당이랑 그냥 합친다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진보정당운동을 영영 접거나, 이 참에 주저없이 녹색사회당으로 고고씽하란 신호로 들린다.

집요하게 당파성을 따져야 할 활동이 있는가 하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운동이 있다. 시위 현장에서 팔짱 걸었던 사람이 평등파인지 자주파인지, "가로등 달아달라"고 찾아온 아주머니가 한나라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한번도 궁금했던 적이 없다.

쉽게 봉합할 수 없는 차이를 덮어둔 통합론이 되레 진보정치세력을 가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놓고 있다. 연대가 절실하다면 함께할 수 있는 운동영역에서 먼저 손 꽉 잡고 열심히 싸우는 게 낫지 않은가?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을 구미역에 바래다주던 날에 든 생각이다. (끝)

Posted by 김수민

강동문화회관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주말 경북문화신문 인터넷판에 게재된 구미경실련의 <읍▪면▪동 찾아가는 저예산 정책 발굴 탐사활동>의 ‘인동-진미동’ 편해당 지역의 주민이자 지방의원으로서 유심히 읽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본 의원의 정책과 상통하는 사안도 있고, 긍정적으로 검토할 내용이 많았다. 특히 ▷인동지역 복지 네트워크 만들기 ▷인동 우체국 뒤편 국유지 시설주차장 용도변경, 공영 주차장 활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며, 즉각 추진해야 할 과제로 꼽고 있다.


지금은 일단, 신속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안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그것은 ▷강동문화 복지회관 입지 변경 주문 ▷주5일 수업제 전면 시행 대비, 인동 도서관 뒤편 주차장에 청소년 체육문화센터 시설 ▷3▪1운동 기념 공원 조성, 전단계인 기념탑 혹은 기념동상 건립 등이다.



강동문화회관, 접근성 문제 해법 없음을 인정하고 

대안 제시 및 주민의견 재수렴 거쳐 입지변경해야


고백하자면 그동안 강동종합문화복지회관 입지 문제로 인한 고민이 매우 심했다. 접근성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만들 수가 없다. 입지로 선정되어 있는 인동자동차운전전문학원 부근의 구평동 산18번지는 구미경실련이 지적한대로 칠곡에 가까운 구미시 외곽지대이다. 다른 시설도 아닌 ‘문화회관’을 세울 만한 장소가 아니다.


시 당국에서 흘러나오는 반론은 어이없음을 넘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부근 구평동이나 칠곡 지역에 택지 개발이 되면 이용객이 많다”는 것이다. 택지 개발이 어떻게 될지도 미지수지만, 되기만 하면 마치 땅이 쭈그러들어 문화회관이 마치 강동지역의 중심에 서는 듯 설명하고 있다. 그야말로 화살부터 쏘고 과녁을 그리는 격이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본 의원으로 하여금 “대중교통 활성화 등으로 접근성 문제 해결”이나 “야외공연 기능 등 분산 배치”가 아니라, “입지를 원점에서 재검토”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들었다.


구미경실련의 입지 재선정 요구를 환영하면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 두가지를 지목한다. 첫째, 토지보상을 한 구평동 산18번지 일대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둘째, 문화회관이 들어설 만한 또다른 입지가 있다면, 그곳에 건립될 문화회관의 규모와 성격은 어떻게 되는가? 입지의 단점 때문에 문화회관 건립이 늦춰지거나 아예 무산될까봐 불안해하는 주민 일각을 안심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민관이 다시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특히 그동안 논의에서 소외된 계층의 참여를 반드시 이끌어내야 한다. 왜 하필 구평동 산18번지인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기에 짓는지조차 모르는 주민들이 많다. 그들은 주로 중년층보다 소·청·장년층에, 남성보다 여성에,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 쪽에 포진되어 있다. 무엇보다 문화예술 종사자나 동호인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된 적 없이, 그저 ‘시설 하나 지으면 좋은 일’이라는 시각이 팽배해 있음을 확인할 때도 많다.


수많은 주민들이 청원을 제기하고 그것이 수용된 직후의 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랜 고심 끝에 본 의원의 현 입장은 “구평동 산18번지, 적어도 거긴 아니다”이다. 이것이 적절한지 아닌지 주민들과 토의해보고 싶다. 행정 당국도 자신감이 있다면 그래야 한다.  


  

인동도서관 뒤는 주차 문제, 쉼터 기능 약화 우려 

청소년문화시설 건립은 청소년 대상 여론조사가 필수


인동 지역 청소년문화시설 건립에 관한 경실련의 원론에 동의한다. 경실련은 또 진평동 소재 시립도서관 인동분관 뒤 주차장을 건립 장소로 지목했다. 주말이면 수많은 청소년들이 이곳을 출입하므로, 이 부근에 건립하면 접근성이나 이용도 측면에서는 하자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지난 선거 기간 이와 같은 구미경실련의 제안을 이미 읽었음에도 수용하기가 힘든 이유가 있었다.


첫째, 경실련이 입지로 제안한 주차장은 텅 빈 공간이 아니다.(사진 위) 둘째, 주차장에 건립될 경우 공원(사진 아래)이 건물 두개와 산에 가로막혀 쉼터 기능의 약화가 우려된다. (참고로 이 사진은 6월 18일 토요일 오후 6시경 촬영한 것이다.)


 


우선은 인동지역 청소년문화시설 자체의 필요성을 널리 알려 주민의 힘을 모을 때이고, 논의되는 입지는 다양할수록 좋다. 첫 번째 과정은 강동문화회관의 사례를 따르면 좋고, 두 번째 과정은 강동문화회관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선결 조건 역시 자명하다. 인동 지역 청소년들을 상대로 시설의 특성과 위치 등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며, 그들을 건립 사업의 주인공으로 모시는 것이다.


선산읍 노상리의 청소년 수련시설들을 상기하자. 국비를 따낼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청소년수련관’이 건설되었으나, 청소년들이 먼 거리를 오가며 이용한다는 보장이 없어 숙박시설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수련관의 특성상 숙박시설이 없기 때문에, 숙박시설을 갖춘 특성화시설을 수련관 바로 옆에 또 짓는 웃지 못할 사태가 연출되었다. 수련원이나 야영장, 유스호스텔이 아닌 이상 청소년수련시설은 생활권에 지어져야 한다. 그리고 가장 관련성이 높은 청소년들이 입지 선정에 참여해야만 한다.



현 인동주민센터 부지 매각과 연계는 바람직하지 않다

3.1운동기념은 이내성 선생 조명 등 ‘스토리 텔링’과 함께 

    

경실련의 언급대로 3.1운동기념광장(공원)은 대표적인 주민숙원사업이고, 현재 태극기가 걸린 장소를 염두에 두고 있으나, 부지매입 때문에 조속히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현 인동동주민센터 부지 매각비 일부로 사업예산을 충당하는 데는 반대한다. 경실련에서도 주지하고 있겠지만, 인동에서는 어떤 사업이든 부지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데, 기존 계획대로 인동동주민센터 현 부지를 매각해버리는 것은 경솔한 행위일 수 있다. 때문에 본 의원은 부지매각을 다시 신중히 검토하거나 철회하고 공공적 이용방안을 강구하자고 주장한다. 5대 시의회에서 통과한 사안이라서 6대에서 승인해야 한다는 일부의 반론은 폐쇄적 논증이며 행정편의주의에 불과하다.  


또한 인동3.1운동 기념사업 역시 다른 사례들처럼 ‘시설 중심’으로만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해마다 3.1문화제를 개최하지만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은 지역사회에 알려져 있지 않다. 가령, 오늘날 옥계 지역의 독립운동가 장진홍 선생은 재조명되고 있지만, 그를 독립운동으로 이끈 동지인 진평동 태생 이내성 선생은 여전히 무명에 가깝다.


지역 독립운동가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구미경실련과 경북문화신문에 이내성 선생 기념사업을 하자는 제안을 드리고자 한다. 이내성 선생은 매형인 이영식 선생, 진평교회(현 강동교회) 이상백 목사와 함께 3.1운동을 모의·주도했다. 3.1운동 참여자 가운데 이후 행보가 가장 뚜렷한 인물도 그다. 코민테른에 가입해가며 폭탄테러투쟁을 펼친 이내성 선생은 일경의 추적을 받다가 자결했다.


강동교회나 만세운동 장소(진평동 산8-2번지)에서 가까운 진평동 543번지(무지개 어린이집 부근)가 이내성 선생의 생가터이며, 그 바로 옆이 이상백 목사의 생가터다(사진 참고). 지금은 원룸밀집구역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려 동네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성도 더 높다. 이곳과 인동도시숲 등지에 동판, 안내 표지를 설치하는 단기적 소규모 사업부터 본 의원과 진미동사무소가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시민단체, 향토사학자들과 문화예술인들이 동참해 ‘스토리 텔링’ 작업을 벌이는 것은 기념광장 조성 못지 않게 중요한 사업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동동, 진미동의 정주여건 개선을 위한 구미경실련의 다양한 정책제안에 감사드린다. 인동, 진미 지역은 노동자, 청년의 밀집 지역이면서, 영유아와 젊은 부모의 수도, 긴급한 복지서비스가 절실한 계층도 많다. 동네단위의 방안 뿐만 아니라 앞으로 구미경실련이 개척할 구미시 차원의 복지, 교육, 보육, 사회경제 분야의 정책대안들이 인동동, 진미동 주민들의 행복에 기여하리라고 기대한다.   

Posted by 김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