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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의정활동 4년

(23) 최초로 대표발의한 조례안이 의결 보류되다

2011년을 맞으며 나는 지난 반 년의 의정활동을 돌아보았다. 학교무상급식과 같은 사안을 추진하며, 또 박정희 기념사업에 맞서면서 앞서 나간다는둥 너무 진보적이다라는둥의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진보성에서든 담대함에서든 너무 미진했다는 자평을 내렸다.

 

구미시는 경북도의 예산 삭감에 흔들리면서 초등학교 1~3학년 무상급식 실시를 보류하는 결정을 내렸다. 반면 예산이 비교적 작은 편인 영유아 무상예방접종은 계획대로 20111월부터 민간병의원에서도 시행했다. 대상은 구미시 관내 거주(주민등록상)0~12세까지의 아동이었고, 지원내용은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해당하는 내역이었다.

 

17일 구미고등학교 교지 <높이뛰기>의 기자들이 지도 교사와 함께 방문했다. 학생들 가운데는 직업정치인을 희망하는 학생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학생도 정치에 관심이 깊었다. 나중에 학교로 불러주면 정치에 관한 특강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막바지에 담당 교사가 짧은 연속 질문을 할 때 "정치란?"이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부대낌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어울림이다."

 

학생 중 누군가가 "시의원이 좋은 점이 뭐냐?"고 물었다. "국회의원은 지역에 너무 자주 나타나면 안됩니다. 여의도에 주로 있어야 할 사람이 그러면 일을 안한다는 거죠. 국회의원이 가끔 동네를 돌아봐야 그건 과외활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의원이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동네를 돌면 그게 일입니다. 그 일은 즐겁고 일상적인 일이지요. 다른 정치인이 누릴 수 없는 정치인의 특권입니다."

 

정례회도 끝나고 해서 1월에는 관내 경로당을 많이 돌아다녔다. ‘자전거 타고 선거운동했던 의원을 예상 외로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민원을 접수받다가 한 할머니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나는 바라는 게 한 개밖에 없는데 들어줄 수 있능교? 못 들어줄 것 같은데.” “어떤 건데요?” “얼마 뒤에 우리가 놀러가는데, 찬조 좀 해줄 수 있는가?” “못 합니다. 공직자 기부행위가 금지되어 있어요.” 그러더니 할머니들이 와락 웃는다. “거 봐라, 못 들어준다 안 카드나. 하하하.”

 

노인잔치가 열린 인의동의 한 경로당을 방문했다가 덜덜 떤 경험도 있. 행사가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가방을 놔둔 방의 문이 잠긴 것이다. 할아버지들이 안에서 고스톱을 치고 계셨다. 경로당 총무격인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제 가방이 방 안에 있는데요. 문이 잠겨서......” 그러자 할머니께서 득달 같이 방앞으로 달려가시더니 문을 차며 소리를 지르시는 게 아닌가. “이 영감탱이들, 또 화투 치제? 문은 와 걸어잠그고 지랄이고. 문 열어라, !” 이 할머니는 방 안 할아버지들에 비해 연세가 낮아 보여서 조금 당황했다. 말리려고 했으나 아니 그러실 것까지는......”하고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문을 열고 나니, 아뿔싸, 건너편에 입구와 통하는 문이 또 하나 있었다. 열린 문이었다. 그쪽으로 들어가면 될 것을.

 

구평동에 있는 경로당에서는 할머니들끼리 언성을 높이는 가운데서 덜덜 떨기도 했다. 어느 할머니께서 시의원이 왔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저짜 아래 점방집 아들내미도 시의원하겠다고 하면서 집에도 늦게 들어온다고 하더라고 말씀하신 게 화근이었다. 옆에 앉은 할머니들이 차례로 흥분하시기 시작했다. “뭐라꼬? 그 집 아는 초등학생이라!” “초등학생이 무슨! 이 할매가 이야기를 지어내나?” “또 벌로 지낀다, 벌로!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단 한 분만이 가만히 계셨는데, 알고 보니 귀가 안 들리시는 분이었다. 처음 말씀을 꺼낸 분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계셨다. 말리려고 했으나 또 나는 굳어버렸다. 어르신들끼리의 싸움은 무서웠다.

 

구평2동의 어르신들은 구평초등학교 앞 교통사고를 우려하고 계셨다. 그러잖아도 나 역시 지나가다가 사고 현장을 목격한 바 있었다. 칠곡군 가산면에서 구미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이곳에서 차들은 좀처럼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일단 보행 안전이라도 유지해야겠다 싶어 인도 설치를 추진했다. 1차적으로 영무예다음1차아파트에서 구평초등학교까지 인도가 놓였다.

 

2011년이 밝으며 나는 최초로 대표발의할 조례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원구성 당시 나는 의회운영위원에 여성 의원이 하나도 없다며 구미시의회 위원회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나는 의회운영과 예산 심사, 의회내 사고시 열리는 윤리특별위원회 등에서 여성적 관점과 양성평등을 확보하기 위해 의회운영위원회와 각종 특별위원회에 여성의원의 4할 이상이 참여하도록 하는 개정조례안을 준비했다.

 

지방의회에서 조례안 발의는 전체 의원의 1/5 이상이거나 10명 이상이 서명하면 가능했다. 구미시의회는 23명이므로 5명 이상이 서명하면 된다. 나는 이 개정조례안을 발의하면서 발의선을 훌쩍 넘기는, 전체 의원의 2/3에 달하는 16명의 서명을 받았다. 나는 연초 여성 의원 네 명에게 <지방자치 가이드북>이라는 책을 선물하며 조례안 추진 소식을 알렸는데, 네 명 모두 배려해줘서 고맙다며 가장 먼저 공통발의자로서 서명했다.

 

그러나 210일 막상 의회운영위원회에 개정조례안이 상정되자 반대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의회운영위원을 여성에 할당하다 보면, 여성 의원이 현재보다 늘어날 경우 상임위 부위원장을 여성으로 위촉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뭐가 문제인지 나는 알 수 없었으나, 산업건설위원회에서 각각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맡던 김태근 의원(당시 무소속/인동, 진미)과 강승수 의원(당시 무소속/고아, 선산, 무을, 옥성)여성이 건설 분야에 전문성이 있기가 어려운데 산업건설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길 수 있느냐는 논리를 폈다.

 

전문가 운운은 편협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시의회 의원 누구도 시험을 쳐서 당선된 사람은 없다. 상임위 위원장, 부위원장도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될 뿐 전문성 검증 따위의 절차는 거치지 않는다. 그리고 전문성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김태근 의원이나 강승수 의원처럼 건설업체 대표 출신이어야 건설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것인가. 의회운영위원회에 만일 여성 의원이 있었다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결국 조례개정안은 의결이 보류되었다.

 

나는 반대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으나 조례개정안은 다시 상임위에 상정되지 못했다. 나 스스로도 규정을 만들어서까지 여성 할당제를 관철시켜야 하는지 의문이 든 탓도 있었다. 다만 이 조례개정안이 발의된 이후 여성 의원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도 4명의 여성 의원 중 2명 이상은 자연히 들어가는 관례가 생겨났다.

 

한편 나는 지역구에서 이른바 진평동 본동어린이집과 인의예림아파트 사이의 언덕길을 복원하는 일에 착수했다. 이 언덕길은 오래 전 산을 깎아내는 과정에서 절반만 남게 되었고, 이 길을 활용할 수 없게 되자 주민들은 인동도서관을 빙 돌아서 먼 길을 다녀야 했다. 나머지 절반은 옹벽 뒤편으로 돌아서 어설프게 생긴 돌계단을 밟아 가까스로 올라야 하는 길로 바뀌었으므로, 여전히 이 길을 이용하는 주민들도 불편을 겪고 있었다. 또한 인의주공아파트 뒷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은 이 길을 거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직접 현장에서 점검하니 은근히 이 길을 사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심지어 출근길에 자전거를 매고 오르막을 오르는 주민도 있었다. 이 길은 옛날에는 경운기도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길이었다.

 

담당 부서인 도시과로 가서 과장과 용지개발계장을 만나 옹벽 일부를 허물고 언덕 정상부를 조금 깎아서 언덕길을 다시 만드는 방안을 논의했다. 며칠 뒤 김태근 의원은 소식을 듣고 이것이 되겠냐?”면서도 김 의원이 알아서 해보시라고 했다. 이쪽 토지의 지주들과는 쉽게 협의가 되었다. 다름아닌 그들이 민원을 제공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2011년 제1차 추가경정예산에서 사업비가 마련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언덕을 많이 깎을 수가 없어 복원한 길이 옛날 그 길과 달리 가파르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