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은 구미시 산하 각종 위원회가 활발히 열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예산안을 확정지어야 했기 때문에 각 부문별로 위원회들이 일제히 열렸다. 의원들도 여러 위원회의 위원을 맡고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를 비롯해 중앙정부에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그들도 현실은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위원회는 대체로 공무원, 전문가를 포함한 시민 그리고 지방의원으로 구성된다. 원론적으로는 시민 위원의 참여 폭이 넓은 것이 옳다. 그러나 우선 인력의 한계와 행정에 남은 폐쇄성으로 시민 참여의 폭이 무척 좁았다. 그리고 대개의 시민 위원들은 시나 시장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고, 노골적으로 집행부 입장을 변호하거나 별 말도 없이 회의 수당만 챙긴 채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는 지방의원 외의 다른 위원이 적극적으로 시의 계획에 반대하고 나서는 꼴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나는 용역심의위원회, 사회단체보조금심의위원회, 민간보조금 심의위원회 경제농업분과, 교육경비보조금 심의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예산안의 윤곽을 미리 알 수 있었다. 특히 각종 연구용역이나 설계용역을 심의하는 용역심의위원회가 큰 도움을 줬다. 2010년 첫 참석 때는 구미시가 낙동강변 수상비행장을 계획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예산안 심의에서 이를 삭감해서 무산시킬 계획을 짤 수 있었다.

 

그러나 위원회 단계에서 잘못된 사업을 차단하려는 시도는 성공한 적이 없다. 낙동강변 수상비행장 설계용역도 위원회를 통과했다. 사회단체보조금 심의위원회에서는 자유총연맹 구미지부가 계획한 학생 병영체험캠프에 문제제기했다. 군인이 아닌 사람을 병영체험캠프에 보내는 것은 군사주의적 문화였고, 더구나 자발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을 참가시키는 것은 강제적이고 비민주적이었다. 만일 병영캠프에서 총이나 탱크 탑승과 같은 행위를 한다면, 유엔 아동인권협약에서 금지하는 적대 행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위원들이 이 사업의 예산 책정에 찬성했다.

 

교육경비보조위원회에서는 관내 고교 진학 우수 학교에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준비하는 예산을 반대했다. 학생들의 역외 이탈을 막으려면 고교 교육 환경 전반을 개선해야 할 일이었다. 이런 인센티브로 강하게 인위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경우 교사들의 일방적 진학 지도로 학생들의 고교 선택권이 침해될 공산이 커졌다. 또 무엇보다 근소한 차이로 우수 학교가 가려질 텐데 어떤 학교는 인센티브를 받고 어떤 학교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불공정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들어온 공무원과 교육청 관계자, 학교장들 대다수는 별 논리도 없이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표결을 불사했으나 큰 차이로 지고 말았다. 회의가 파하면서 나는 앞으로는 절대 위원회에서 힘을 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의회 예산 심사에서 삭감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 뒤 나는 내가 반대하는 사업이 통과되는 순간 허허 웃으며 의회에서 삭감할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1113일자 <한겨레> ‘왜냐면에 나의 투고문 박정희 찬양론에 드리워진 전체주의가 실렸다. 9월 추경예산심사에서 나의 박정희 추모제 및 탄신제 지원 예산 삭감 시도가 만든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리 없었다. 잠복되어 있는 내게 대한 비난에 대해 박정희 탄신제인 14일을 앞두고 반격을 거행했다. 파문은 주로 구미 지역 내부의 수구적 여론 내부를 맴돌고 있는 시기 쟁점을 전국화한 것이다.

 

“(...) 강박증에 물든 인간일수록 한없이 취약하고 우스워진다. 일개 시의원의 도전에 호들갑을 떨며 입장 변경 또는 침묵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라.

(...) 박정희 찬양자들이 과연 언제까지 구미의 재구성을 막을 수 있을까. 얼마가 걸릴지 몰라도 시간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논리의 힘을 편들 것이다. 만물은 변하며, 문제 속에 답이 있다.“

 

각지에서 격려 메시지가 쇄도했다. 충남 공주에 거주하는 63세의 약사 선생님은 편지와 함께 영양제를 넣어 보내오기도 했다.

 

1117일에는 구평동 아이누리 장난감도서관이 개관식을 가졌다. 별빛공원 옆 상현빌딩 2층에 자리잡은 이곳은 영유아에게 필요한 장난감을 대여하는 구미 최초의 장난감도서관으로 구미YMCA에게 운영이 위탁되었다. 장난감도서관 설립은 선거 당시 내가 발표한 공약이기도 했다.

 

1119일 과천시의회에서 열린 전국 지방의원 초청토론회에 참석했다. 모여든 지방의원들은 “(의회에서 부결된) 의안을 집행부가 다시 제출하는 관행을 지방자치법으로 제동 걸자”, “의원 휴게실을 민원 편의방으로 운영하자”, “동별 업무보고도 신설하자”, “편안하고 정확하게 조례를 읽을 수 있도록 국어전문가 자문을 받자”, “의원발의 조례안도 입법예고와 공청회를 거치자”, “기초의원 보좌관 제도가 필요하다등등의 제안을 내놓았다.

 

인근의 한 카페에서 뒷풀이에 참여하며 과천시의회 서형원 의장을 만났다. 환경운동연합 출신의 그는 나처럼 무소속이었다. 우리는 정당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우리가 당을 만들까요?”라고 말해버린다. 잊을 수 없는 복선이었다.

 

칼라TV’의 고문으로 과천에서 살던 정일욱 선생의 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정 선생은 부인께 얘가 김수민이야. 떨어질 애가 당선이 돼버려서 시의원으로 나타났어라고 소개했다. 울진에서 올라온 장시원 의원(무소속)도 함께였다. 장 의원은 진보 성향의 지역 정치인으로 울진 반핵운동에 참여한 이력이 있었다.

 

의회는 연말을 맞이해 정기회를 열고 우선 1126일부터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했다. 1년간의 행정을 점검하고 비판하는 자리로 국회의 국정감사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편하다. 혹자는 의정활동의 꽃이라고 부른다. 의원이 된 지 불과 6개월도 되지 않아 소재가 풍부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단단히 준비했다.

 

의회사무국 심사에서 내가 입은 파란색 정장 재킷이 화제가 되었다. 이 옷은 내 옷이 아니라 구미에서 열리는 어느 행사에서 개최되는 단원복이었다. 의원 대다수는 행사 개최 당시 의원연수가 잡혀 있기도 해서 그 옷을 입지 않았다. 입었더라도 개막식 하루만이었다. 이런 옷을 포함한 각종 기념품들이 의회로 무분별하게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직접 옷을 입은 이유는 보라. 평소에 못 입는 옷이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고 의회사무국 공무원들이 잘 어울리시는데요. 가끔 입으셔도 좋겠습니다라고 말해서 웃음이 터졌다.

 

첫 해라 아무래도 축적된 정보가 작다 보니 임기 중 네 차례의 감사 중 가장 내용이 빈약했다. 그래도 조례안을 살피며 행정이 그에 맞게 펼쳐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며 감사를 준비했다. 사회단체 보조금 심의위원회에 보조 대상 단체 회원이 들어온 것을 발견해 지적했고, 명예읍면동장 제도가 사문화되었음을 밝혀내며 조례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박정희리더십 독후감에 극우 성향 단체와 공동으로 후원을 한 사실도 문제 삼았다.

 

애매한 경우도 있었다. 그즈음 각지에서 호화 시청사가 문제가 되고 면적이 너무 넓은 시장실들이 언론에 보도되고는 했다.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구미시장실은 99제곱미터 이하여야 했다. 그런데 회계과에 질의했더니 ‘101제곱미터였다. 법령 위반이 아니냐고 질의하자 씽크대 등은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 거기를 빼면 기준 이하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는 허위 답변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답변 공무원이 나를 찾아와 제가 잘못 알았다. 2제곱미터 초과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초과 면적이 작아서인지 중앙정부에게 지적받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나도 이 2제곱미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으니까. 여하간 이것은 허위 답변으로, 증인 선서까지 하고 입회한 공무원으로서 부당한 언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행정사무감사를 마무리하면서 의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허위 답변 재발 방지를 촉구하자고 건의했다.

Posted by 김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