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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참여 행정개혁

구미시 주민참여예산제 조례제정 과정 (시사IN)

풀뿌리 수첩   들어보셨어요? 구미시 예산학교  
 
구미시가 제출한 부실한 조례를 보류시키고 대안을 준비했다. 예산학교를 열 수 있도록 하고 시의원의 연구회 참여를 보장했다.
 
 
 
기사입력시간 [244호] 2012.05.24  09:23:44  조회수 2544 김수민 (경북 구미시의회 의원)   
 
 
 
 
경상북도 각 시·군의 주민참여예산제 조례를 훑어보면 구미시 조례의 특징이 두 가지 나타난다. 첫째, 구미시는 가장 늦은 2012년 1월에 조례를 제정했다. 둘째, 10여 개 조항을 갖춘 다른 시·군 조례와 달리 구미시 조례는 5개장 21개 조로 이뤄져 있다.

 

예산 편성 과정에서 주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주민참여예산제는 내가 선거에서 내걸었던 제1순위 공약으로, 2010년 11월 첫 시정질문에서 주제로 올리기도 했다. 시는 주민참여예산제가 가장 활발히 시행된 지역에 벤치마킹을 다녀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1년 8월에 나온 입법예고안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읍·면·동별로 주민의 의견을 모으는 지역회의, 시민들이 제출한 사업을 수렴하고 정리하는 시민위원회, 시민대표와 공무원이 함께 예산편성안을 확정 짓는 민·관협의회, 예산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예산학교, 예산제 운영을 토의하는 연구회 등이 모두 빠졌다. 입법 예고 이전에도 아무런 실험이 없었던 터라, “하지 않겠다”라는 표현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시가 믿는 구석은 의회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상당수 의원은 참여예산제에 따라 권한이 축소될까봐 걱정했다. 예산안 심사 때마다 의회에 압력을 넣는 민간단체들을 감안하면, 이런 걱정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예산 심의는 예산 심의이고 예산 편성은 예산 편성이다. 참여예산제는 의회의 예산심의권을 침해할 수 없다. 참여예산제로 권력이 줄어드는 쪽은 예산 편성을 하는 집행부다.

 

의원이 민원 해결을 두고 주민에게 생색을 낼 것이 아니라면, 참여예산제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나는 다른 의원들에게 참여예산제가 “‘동의원’이 아닌 진짜 ‘시의원’이 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주민 참여를 독려하면서 리더십을 구축하고, 참여예산제에 들어온 주민들과 함께 자신의 주력 사업을 추진하며, 참여 주민과 공무원이 반목할 때는 중재역을 맡을 수 있다. 한정된 예산 속에서 의원들이 겪는 어려움을 주민들이 공유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다양한 계층의 참여가 관건

 

나는 2011년 9월 의회에서 시가 제출한 조례안을 우선 보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 조례안이 부실하다는 데 동의하는 의원들이 있었다. 그 후 (‘수정안’이 아닌) 전면적으로 조항을 새로 채워넣는 ‘대안’을 준비했다. 예산학교를 의회도 열 수 있도록 하고, 의원의 예산연구회 참여를 보장하여 의원들의 불안을 덜고자 했다. 단, 지역회의와 민·관협의회에 대한 다른 의원들의 부담 탓에 일단은 시민위원회만 두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 대안은 2011년 연말 의회를 통과해 이듬해 초에 공포되었다. 뒤에 알았지만 구미시의회 사상 최초의 대안 발의였다.

 

물론 조례안의 내용이 시행의 수준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주민참여예산제를 세계적으로 선도한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 지역에는 조례가 없다고 한다. 실험을 통해 해마다 참여예산제를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데 조례가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조례 없이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우리 지자체의 현실이 명문화된 규정을 필요로 할 뿐이다. 구미시에서는 곧 예산연구회가 꾸려질 예정이고, 이어 시민위원회도 구성될 것이다. 참여예산제가 보수적인 토착민들이 일방적으로 행정을 주도한다는 악평을 들어온 지역 정치를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까? 아마도 다양한 계층의 참여가 관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