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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선거운동

전문계 고교 출신 지지자와의 만남

비바람 불던 엊저녁 한 지지자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먼저 알게 된 사이이고 오프라인 대면은
처음이었습니다.

현재 게임 개발에 열성을 쏟고 있는 이분은 올해 스물 하나로 우리 지역구의
국립전자공고를 졸업한 바 있는
전문계 고교 출신 대학생이었습니다.
마침 동석한 우리 선거운동원 역시 그 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이분은 정치에 관심이 깊으신 분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현존하는 정당들의 행태와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품평도 했습니다.
요즘 동네정치에 신경을 쓰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마음껏 나누는 일은
오랜만이었습니다.


한편 구미의정에 관해 이분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정책은 교육이었습니다.
제가 펴고 있는
'교육은 협동으로'라는 기치에 공감을 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전문계고교에 대한 것으로
옮겨갔습니다.
인동동에는 구미정보고교가 진미동에는 국립구미전자공고가 있습니다. 진미동, 인동동의
고교 3개 중 2개가 전문계 고교입니다. 제 교육정책에서 절대로 놓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우선 저의 '협동교육네트워크' 공약에서, 전문계고교는 현장직업인, 성인직업교육과 연계되어
직업기술을 익히는 학생들이 후배이자 스승으로 나설 수 있는 새로운 발판으로 자리매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어제 뵌 지지자 분은 전문계고교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문제점들을 졸업생으로서 지적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집니다.


첫째, 학생 인권, 하급생 인권 문제입니다. 어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직까지도 식사시간에 하급생은
손을 책상에 올리지 못하는 악습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올해도 마찬가지란 겁니다.
좀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 지지자 분이 고교를 졸업한지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신빙성이 높습니다.
이따위 악습은 군대에서도 사라져갔던 것입니다.
이밖에도 하급생에게 주어지는 괴롭힘은 엄청났습니다. 인문계고교에서는 점차 사라져갔던
그 일제식 군국주의 문화가 전문계고교에서 새파랗게 젊고 어린 학생들 사이로
아직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상급생이 하급생을 괴롭히면서 한다는 말은 "억울하면 너도 상급생돼서 밑의 애들 교육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런 게 '교육'인지? 사람 '밑'에 사람이 있다는 것인지?
억울하면 괴롭힌 당사자를 징벌하는 게 맞죠. 대물림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학생들이 아니라 학교 바깥에 묻고 싶습니다.
이런 환경은 누가 만든 겁니까?
전문계 고교생은 일부러 강하게 키우는 것입니까? 이게 강한 것입니까?
강자 앞에 약해지고 약자 앞에 한없이 강해지는 것이겠죠.  


둘째, 전문계 고교의 인문학적 소양 문제입니다.
독일에서는 엔지니어들이 후한 대우를 받습니다. 독일에 유학갔다온 사람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에 의하면
공부 잘해서 학문하는 사람보다 숙련 기술자들이 마을에서 부자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마이스터', 이탈리아에서는 '마에스트로'라고 불리우는 이 장인들의 자부심이 바로
그 사회의 복지와 노동을 좌우하는 밑바탕이 됩니다.
저는 전문계 고교생들의 자존심을 드높여주고 경영수업까지 받게 해서 숙련노동과 중견기업을
육성하는 방안에 적극 찬성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마이스터 고교' 정책이란 허울은 독일을 따라하고 있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한국교육의 수준상 현재의 마이스터 고교 정책은 전문계 고교생을 한낱 기술보유자로만 전락시키고야 마는 한계와 오류를 노출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적 소양이란 인문계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 내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이루는 철학, 문학, 역사 등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입니다.
프랑스 등 교육선진국에서는 인문계 학생들도 수학을 열심히 공부합니다.
또 자연계 학생들도 철학을 필수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 기초학문들은 일개 학교 지정과목이 아닌, 우리의 인생과 교양의 필수 항목입니다.

전문계 고교를 나온 제 선거운동원이 어느 교사가 했다는 망언을 인용했습니다.
"야 야, 너거뜰은, 지금 갈챠주는 이 기술만 잘배우면 돼. 이거 잘하면 먹고 산다."

인문학적 소양 없이는 '먹을' 수는 있어도 잘 '살' 수는 없습니다.


전문계 고교생들은 인문계 고교생들처럼 불과 스무살도 되지 않은 청소년들입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괄시당하는 게 청소년의 현실인데, 거기다가
전문계 고교생이라는 이유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인문학, 기초과학의 햇볕이 들지 않는 기술만능주의에 몰아넣어서야 되겠습니까?

청소년은 우리사회의 미래가 아닙니다.
청소년은 어른의 자화상인 것입니다.

전문계 고교생들의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명품교육도시' 따위의 선전은 공염불일 뿐이며,
문화예술, 보육, 어르신 복지, 노동권에 대한 어떤 공약도 진실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현 구미시의원, 그리고 시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 가운데
여기에 나서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제 만난 그분도 역시나 여느 사람들과 같은 대답을 던지고 헤어졌습니다.
"물갈이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