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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KEC부지에 웬 상업시설?

최근 노동자 75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밀어붙인 KEC가
3천억원 규모의 부동산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주체는 국가 쪽은 산업단지관리공단이구요.

직장보육시설도 갖추지 않는 사업장이
주제에 상업시설을 공장 빈 부지에 갖추겠다고 법썩을 떨고 있습니다.
백화점이 들어올 경우 중소상권의 침체도 예상됩니다만
제조업 정책이어야 할 '공단 구조고도화'가 부동산 투기까지 부추기는
희한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아래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한지원 님의 글입니다.



KEC 부동산개발로 다시 본 정부의 산업단지관리 정책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한지원

 

KEC가 정리해고를 단행하며 동시에 3천억 원 상당의 부동산 개발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금속노조 KEC지회에 따르면 KEC는 산업단지관리공단 대경권본부에 3천억 규모의 부동산 개발 계획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33억원 비용절감을 위해 75명의 노동자를 자르면서, 그 비용절감 계획의 30배가 넘는 자금을 동원하겠다고 하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반도체 회사가 대형마트, 아웃렛, 호텔 등이 입주하는 부동산 개발 정책을 계획하고 있으니 더욱 기가 막힌 노릇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KEC 사측의 행태만이 아니라 국가산업단지를 관리하는 지식경제부와 산업단지관리공단의 태도다.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산업단지에 대형마트, 호텔 개발 계획 신청을 받는 것부터 이상하다. 산업단지관리공단은 이른바 ‘구조 고도화 대행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사업 계획을 받았는데, 구조 고도화가 대형마트 입주라는 이야기다.

 

국가산업단지는 지식경제부 산하 기관인 산업단지관리공단이 관리 책임을 지고 있다. 산업단지관리공단은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국의 49개 산업단지에 대해 ’산업단지관리기본계획‘(이하 관리계획)을 수립한다. 관리계획에는 각 산업단지의 면적, 입주대상업종, 입주기업자격, 산업용지의 용도별 구별, 공장의 배치, 지원시설의 설치 및 운영 등을 담는다.

 

그런데 여기서 산업단지관리공단의 꼼수가 등장한다. 바로 지원시설에 관한 것이다. 입주대상 업종이 제조업 , 지식산업, 정보통신산업에 제한되어 있는 반면 지원시설은 규정 자체가 두루뭉술하다보니 관리계획에 은근슬쩍 이런 저런 업종들을 끼워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2공단에 위치한 마리오는 2001년 건물을 개축하며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공간을 모두 의류 소매업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 관리기본계획을 위반한 것으로 산업단지관리공단은 인근 중소 상인들의 항의 속에서 마리오에 대해 산업단지 입주를 취소했다. 마리오는 이에 불복해 입주 취소에 대해 행정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8년 2월 행정법원은 산업단지관리공단이 마리오에 대해 입주기업 취소를 내린 것에 대해 적법하다고 판정했다.

 

하지만 2009년 말 지식경제부는 마리오 아웃렛을 단지에서 밀어낸 것이 아니라 마리오 아웃렛을 합법화한다. 의류 패션 산업 활성화를 위해 지원시설 면적의 50%에 대해 소매업(아웃렛)을 허용한다고 관리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그런데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패션산업은 사실 고용규모가 크지도 않거니와, 더군다나 생산은 대부분 단지 내에서 하고 있지 않다. 소매업과 패션산업의 연결고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일종의 특혜라는 것이다. 그리고 산업단지 지원시설 제한에 대한 족쇄가 풀리자 마리오 아웃렛을 필두로 더블유몰, 패션아일랜드 등 대형유통업체들이 산업단지 중심을 장악해 나갔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산업단지라기보다 오히려 서비스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대문 패션타운과 비슷한 형태로 변모해 나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산업단지가 변화되면 산업단지는 제조업 중심의 부가가치 생산이 아니라 부지 매매, 대형 복합판매단지 거래 등 부동산 투기 장소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는 모든 건물마다 부동산 업소가 들어서 있고, 많은 입주 기업이 부동산 투자 목적으로 건물을 매매하는 일도 다반사다.

 

산업단지는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조성한다. 입주기업은 취득세, 등록세를 면제받고, 재산세 감면도 받는다. 또한 입주업체에 대해서는 각종 금융 지원도 이루어진다. 이렇게 정부차원에서 지원되는 산업단지가 부동산 투기, 지역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대형유통업체를 위해 이용된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자, 정부의 직무유기다.

 

현재 구미 국가산업단지 관리기본계획에는 KEC가 제출한 복합판매시설, 호텔 등을 허용하는지 여부, 허용한다면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먼저 부동산 개발을 하고, 마리오 아웃렛과 같은 절차를 밟을 수도 있을 것이고, 산업단지관리공단이 두 손 걷어붙이고 관리계획을 변경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정부가 나서 정리해고를 지원하는 꼴이며, 한국 제조업 발전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지경부와 산업단지관리공단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