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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먼저다

나는 왜 노동조합원인가?

예전 어느 진보정당에서 상근자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런데 당내의 반대에 부딪혔다. 어떤 반대자들은 "상근자는 활동가지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들 중 당내 좌파를 자처하는 정파도 있었다는 점이다. 상근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도 않는 그들은 툭하면 '대공장'을 말하곤 했다. 이들에게는 영국의 유명한 문필가 조지 오웰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프롤레타리아는 육체 노동자뿐인 듯 대하는 잘못된 습성은 버려야 한다." 오웰은 "사무원, 엔지니어, 출장 판매원, '영락한' 중산층, 마을 식품점 주인, 하급 공무원, 그 밖의 온갖 애매한 사람들에게 바로 그들 '자신'이 프롤레타리아란 사실"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썼다. 
 
지금은 한국에도 공무원노조가 있고 교원노조가 있다. 소위 선진국에서는 이런 노조들이 폭넓은 정치활동까지도 보장받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를 그저 '기업에 근무하는 사원'만으로 제한하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에도 어떤 자가 내게 "시의원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따졌다. 나는 스스로를 사원이나 직원이라고 소개한 적이 없다. 노동자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민주노총 경북지역일반노조와 청년유니온의 조합원이다. 나는 왜 노동자인가? 나는 왜 노동조합원인가?

내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그는 "고용되어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철저한 기업단위 사고다. 그는 "노조는 기업별로 존재해야 하며, 정치투쟁을 벌이면 안 된다"고도 했다. 실제로 그런 노조가 있다. 산별이나 연맹에 가입되어 있어도 기업별 노조의 성격을 훨씬 강하게 띠고, 정치투쟁을 회피하는 노조 말이다. 이들은 사업장 담벼락 바깥의 사정에 관심이 없다. 공익적 성격이 희박한 순도높은 이익집단에 그치고 있다. 아니, 심지어 사업장 안에서 함께 일하는데도 비정규직 동료를 무시한다. 사회와 정치 전반에 관심이 없으니 기업단위에 갇혀버리고 결국 자신들의 권익도 지키지 못한다. 나는 양심상 그런 노조를 사회구성원으로서, 정치활동가로서, 또 노동자로서 절대 지지할 수 없다.

노동자는 자본주의 체제가 만든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제공하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뜯긴다'. 아무리 임금이 많고 노동시간이 작아도 노동자는 자유롭게 일하기보다 '먹고 사느라' 속박을 당한다. 게다가 현실세계에는 필요한 만큼은 물론 일한 만큼도 받지 못하며 무겁고 긴 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 체제에서 거두어진 세금으로 먹고 산다. 그 세금은 노동자가 납부한 것도 있고, 노동자의 기여와 희생을 통해 창출된 이윤에서도 나온다. 그리고 나 역시 아무리 자유로우려 해도 묶이고 뜯기는 걸 모두 막을 순 없다. 나는 다른 노동자와 자신을 조금도 떼놓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1인1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보다 노동자가 많다. 그런데도 양자간의 힘이 비등하기는커녕 저울이 너무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으니 오래전부터 이상하게 여겨 왔다. 빈부격차 심화는 물론이고 '돈의 독재'로 인해 일반 민주주의의 후퇴까지 겪는다. 나는 이런 세상을 고쳐서 바로잡으려 한다. 그런데 사람이 자신을 노동자라 생각하는 것조차도 제약하려는 인간과 세력이 있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과연 무엇인가? 직종과 사업장에 따라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고, 그 위에서 안전하게 소수특권세력이, 자본의 논리가 군림하는 세상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나는 스스로 노동자임을 깨달음으로써, 나의 일과 다른 사람의 일 사이에 연대를 맺는다. 임기 이후를 고민하는 기간제노동자로서 계약연장 여부나 이직 가능성을 고민하는 다른 기간제노동자들에 공감한다. 노동의 기회를 얻지 못한 자영업자, 실직자, 구직자 등 특히나 IMF사태 이후 부쩍 늘어나버린 '잃어버린 노동자'들을 정치노동자로서, 이웃으로서 걱정한며, 거기서 나를 발견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투자행위에 가담하고 그만큼 자본가적 성격을 품고 있기는 하지만, 시스템에 얽매여 삶보다 돈에, 놀이나 쉼보다 일에 끌려다니는 처지를 자각한 모든 이들은 잃어버린 걸 복원하고 얻어야 할 것을 쟁취하는 생각과 실천에 나설 수 있고 나서야 한다.

나는 소속된 기업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문이 열린 노조에 들어가,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부조리에 저항하고 세상을 더 행복하게 바꿀 작정이다. 민주노총 경북지역일반노조에 가입한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지역활동과 노동운동을 결합할 수 있어서 나에게는 매우 적절한 단체다. 나아가 나는 기업별노조는 물론 산별노조의 한계까지 뛰어넘어 민주노총이 일반노조의 정신에 입각해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동시에 15~39세의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청년유니온 조합원이다. 구직자, 실직자도 포함된다. '구직자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우격다짐이 있다면, 그 앞에 청년유니온 관련 재판을 통해 나온 판례를 내밀겠다. 이렇듯 법률로 장난을 쳐서 노동자를 탄압하는 공격은 과거보다 성공률이 낮아졌다. 아직 불만족스럽지만, 엄연히 자각과 투쟁을 통해 바뀐 세상이다. 멈추지 말고 더 나은 세상으로 가련다. 꼬운 분이 계셔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노동조합원이다. 나는 노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