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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청소년

[본회의 발언] '파랑새학교'와 지역교육의 새로운 길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인동동 진미동 지역의 무소속

김수민 의원입니다. 저는 오늘 구미 교육의 장래를 논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자유발언의 기회를 주신 허복 의장님과

동료의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새해 벽두부터

구제역 예방활동으로 고생하신 집행부 여러분께도 위로와 격려의

마음 전해드립니다.

 

요즘 구미에는 갖가지 교육담론이 떠돌고 있습니다. 입시 결과가 좋지 않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이를 거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지금 나오는 주장들 상당수는 문제의 해법이라기보단

문제의 원인입니다. 교육의 핵심이 학문에 있다는 진리를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학문이란 무엇입니까. 학문은 시합이

아닙니다. 개개인의 페이스가 제가끔 다릅니다. 채근하면

삐뚤어지거나 쓰러집니다. 다른 사람을 쫓아가려고만 하면

길을 잃어버립니다. 핀란드 같은 교육강국이 경쟁교육을

배제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나친 경쟁교육은

도리어 교육경쟁력을 해칩니다.

 

구미시의 청소년들은 중학생 때 공부를 잘하다가 고등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진다는 일설이 있습니다. 이게 맞는 말인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설왕설래는 잠시 접어두고 현실을 직시합시다. 물고기를

많이 잡아놓은 사람도 정작 잡는 방도를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구미교육은 과연 학생들의 지속가능한 공부를 도왔습니까?

아니었다는 겁니다. 대학입시 부진의 책임을 고등학교에 묻는 건

부질없습니다. 교육답지 않은 교육의 책임입니다. 교육관계자보다

지역공동체의 책임입니다. 입시를 두고 공포와 협박의 논리를

밀어붙인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궁극적인 위기는 결코 기존에 나왔던 각종 학교육성론으론

돌파할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아무리 해도 잘 안될 겁니다. 

구미는 학교의 역사가 짧고 좌우로 불어오는 새로운 변화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학생의 행복은 물론이고 입시에서의 성과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학교에 대한 새로운 듯 자연스러운 관점,

진정한 지역교육을 위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는 얼마 전 한 작은 초등학교 졸업식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여러 학부모들이 학교가 좀 커지기를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아마도 작은학교가 지원 부족이나 폐교가능성에 시달리는

탓이라고 이해는 하였지만, 결코 공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침 그날 졸업생들이 펼쳤던 연극이 떠올랐습니다.

파랑새를 찾아 여기저기 헤맸지만 알고보니 파랑새는 집에 있었다는 줄거리였습니다.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파랑새는 바로 그 작은학교에 있습니다.

 

상주의 몇몇 학교에서는 새로운 실험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작은학교라서 깊고 친절한 교육이 가능한 것입니다. 경기도에서도

여러 학교들이 속속 혁신학교로 거듭나, 부근 지역의 월세가 뛰는

기현상까지 생겨났습니다. 이 학교들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주입식이 아닌 토론식 수업, 경쟁이 아닌 협동교육,

교사자율의 다양한 교과과정과 신선한 교수학습법, 당사자중심의

민주적인 학교운영, 학생인권의 존중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연곕니다. 교육의 양대 가치인 형평성과 수월성에 접근하는 가장

타당하고 상식적인 길입니다.

 

“학교가 폐교 위기인데 어쩌면 좋으냐”, “작은 학교는 크게

만들자” 이런 이야기를 그만 거두고, 교육혁신이 비교적

단기간에 가능한 작은학교를 지역사회 신교육의 시범학교로

만들어나갔으면 합니다. 실제로 구미엔 작은학교에 자녀를 보내기를 희망하는 학부모들이 존재하고, 심지어 칠곡군에 있는 어느

작은학교에 단체로 아이를 보내는 사례도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 안에 있는 파랑새를 못본체하지 마십시오. 구미에 ‘파랑새학교’를 만듭시다.

 

물론 작은학교들만을 별천지로 만드는 데서 끝나는 일은 아닙니다.

작은학교의 도전과 성취, 희망과 행복을 전지역사회로 퍼뜨리고,

그럼으로써 지역교육을 투입위주에서 혁신주도형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지방의회와 지자체의 역할입니다.

이미 우리 시 일부 학교는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의 경험도 갖고 있고, 구미는 ‘글로벌교육특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직 다소 밋밋하고

추상적인 이 특구를 시민들과 함께, 그리고 교육지원청 등과

논의 협력하여 선진적, 대안적인 공교육특구로 진전시켜야 합니다.

 

잔디구장에서 연습한 축구선수는 넘어져 다치는 걸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연하고 능동적인 플레이를 펼칩니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어땠습니까?

“맨땅에서 피터지게 뛰면 투지가 넘쳐 좋은 선수가 된다” 이렇게

우겼습니다. 얼마 전 뵈었던 한 교장선생님은 퇴임을 앞두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육은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것인데,

우리가 그동안 엉터리 교육을 했다. 너무 안타깝다.” 이제 우리는

이분의 회한과 성찰에 답해야 합니다.

 

‘교육’이란 뜻의 영단어 'Education'의 어원은 'educo'입니다. 이는

‘안에 원래 있던 걸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의미라는 것, 그래서 곧잘 교육은 산파술에 비유된는 걸 함께 되새기면서 발언을 마칩니다.

시민 여러분, 유쾌한 봄날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