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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먼저다

해고노동자 김진숙, 한중 크레인에 오르다

작년 초, 정리해고 사태에 맞서 24일간의 단식을 결행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가벼웠던 그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는 대한조선공사 시절 어용노조 혁파투쟁이 있었던 한진중공업에서 노조대의원으로 활동하다가 1986년 해고되었습니다. 부당해고라는 것이 중론이지만 자본과 권력은 그녀를 작업장으로 돌려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한국 최초의 '여성 용접공'으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사가 <조선일보>에 난 것이 돌아보면 굉장히 부끄럽다는 발언도 했었습니다.

2003년 김주익 열사가 목을 맨 바로 그 85호 크레인에 김진숙 씨는 올라섰습니다. 주변에서 말릴 틈 없이 조용하고 차분하게 농성을 준비하신 것 같습니다. 크레인에 오른 뒤 그녀는 동료에게 "책상 위에 편지글이 있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세상이 너무 가혹합니다.

본디 조선업이라는 게 호황과 불황을 오갑니다. 현재 불황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중도 흑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필리핀 수빅으로 물량을 빼돌리려고 하고, 사측은 자신들의 경영실패를 전혀 책임지지 않습니다.

혹시 구미의 KEC도 그와 같은 전철을 밟아 나가려고 하는 걸까요?
그나마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저지하고 있는 것은 민주노조가 있기 때문이고, 김주익 열사가 숨진 뒤 노동자들이 잘 흩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걱정이 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요. 인터뷰할 적 김진숙 선생은 그들이 어떻게 쫓겨나고 흩어지고 쓰러져가는지 파악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구미 1공단 입구에 펄럭이는 민주노조의 깃발과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들... 어디로 가게 될까요.  

전 작년에 불면증을 씻었는데... 어쩐지 간밤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번 결단 가장 많이 번민, 85호 의미 알아"
[김진숙 편지] "새해 첫 출근 남편에 이불 싸준 마누라 심정 헤아려야"

1월 3일 아침, 침낭도 아니고 이불을 들고 출근하시는 아저씨를 봤습니다.
새해 첫 출근날 노숙농성을 해야 하는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겨울 시청광장 찬바닥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가장에게 이불보따리를 싸줬던 마누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살고 싶은 겁니다. 다들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남고 싶은 겁니다. 

   
  ▲ 6일 새벽,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지도위원.(사진=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지난 2월 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짤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 당했습니다.

 명퇴압박에 시달리던 박범수, 손규열 두 분이 같은 사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400명을 또 짜르겠답니다. 하청까지 천명이 넘게 짤리겠지요. 흑자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된 시간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그 파리 목숨들을 안주삼아 회장님과 아드님은 배당금 176억으로 질펀한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정리해고 발표 다음 날. 2003년에도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스물한살에 입사한 이후 한진과 참 질긴 악연을 이어왔습니다.
스물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하고, 부산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가고 쉰 두 살이 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가장 큰 고비가 남았네요.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많이 번민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
지난 1년. 앉아도 바늘방석이었고 누워도 가시이불이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앉아야 했던 불면의 밤들.
이렇게 조합원들 짤려나가는 거 눈뜨고 볼 수만은 없는 거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 운명이 뻔한데 앉아서 당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한진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들 지킬 겁니다.
쌍용차는 옥쇄파업 때문에 분열된 게 아니라 명단이 발표되고 난 이후
산자 죽은자로 갈라져 투쟁이 힘들어진 겁니다.

지난 일요일,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습니다.
양말을 신고도 발이 시려웠는데 바닥이 참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을 두고 나서는 일도 이리 막막하고 아까운데
주익 씨는… 재규 형은 얼마나 밟히는 것도 많고 아까운 것도 많았을까요.
목이 메이게 부르고 또 불러보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추신: 크레인 위의 김진숙 동지가 구미의 조합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고 합니다. "왜 거길 올랐냐"는 질문에 "여기 바람이 정말 시원하네"라고 하시며 웃으셨답니다. 이 미소와 함께 승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