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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h Columnist

문성근 배우의 구미 강연회 청후감 - 야권대통합론에 관해

11월 24일 88올림픽체육관에서 열린 문성근 배우의 구미 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구미의 야권 시의원인 김정미(민주당), 김성현(민주노동당) 의원도 함께하였습니다. 어제 강연회에 모이신 분들의 소속은 참 다양했습니다.

주제는 요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야권대통합을 통한 새로운 정당 창당이 주제였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폐해가 크고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단일정당을 만들자. 민주당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군소 정당들은 자신의 목표를 단일정당내에서 실현하자.

적지 않은 참석자 분들이 알고 계셨겠지만, 저는 여기에 부정적입니다. 아마 참석한 사람 중에 가장 부정적일 겁니다. 문성근 님께서 제가 무소속이라는 말을 들으시고 "단일정당에 함께 하실 거죠?"라고 물으시자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만 이 운동이 갑자기 왜 이리 큰 열기를 모아나가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문 배우가 가리키는 달보다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한나라당의 힘은 매우 강고합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에 맞서기 위하여 선거 때마다의 연합이나 단일화가 아니라, 아예 같은 정당으로 통합하고, 그 정당은 철저히 평당원 시민 중심으로 운영하며, 내부의 공정한 경쟁에 따라 단일 후보를 선출하자는 것이 문 배우의 뜻입니다.  

제가 여기에 반대하는 이유는 한나라당에 의해 왼쪽에 몰려 있지만, 진보정당들과 민주당, 국민참여당의 차이가 사소하지는 않다는 겁니다. 연합정당이 아니라 정당연합도 매우 힘겨워 보입니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강에서의 접근이 이뤄지면요.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연합정치와 선거승리에 관한 담론보다는 아직 많이 부진합니다.

그리고 어제 뒷풀이에서 밝힌 것처럼 저는 그러한 연합정당 결성으로는 한나라당을 이길 수는 없다고 봅니다. 야권 표를 모아서 2012년 선거에서 이길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공동정부를 구성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공동정부'인가가 관건입니다. 여기서 바람직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선거에서 이미 패배할 것이고, 정권을 창출하더라도 얼마 안 가 한나라당에게 다시 정권을 돌려줄 것이라고 봅니다. 민주진보대연합은 한나라당의 위치를 더욱 다져주는 결과를 낳기 충분하다는 거죠.

또 다양한 색채의 정당들이 한꺼번에 뭉치면 국민의 선택지도 줄어들게 되고, 민주진보연합정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정권이 오가는, 미국식 양당제의 한계가 닥쳐 옵니다. 지난번 블로그에서 논한 바 있지만, 미국식 양당제로는 유럽식 복지사회를 쟁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사회의 앞날에 다양한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섣불리 제가 최선으로 여기는 길을 포기하고, 한쪽으로 쏠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앗 오른쪽 창문앞에 제가 있네요. 왁자지껄 정겨웠던 뒷풀이 자리.


여기에 대해 문성근 배우의 입장은 소선거구제 및 작은 비중의 비례대표 의석 등 제약 요인이 많기 때문에 다당체제로 지금 당장 가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충분히 힘을 쌓아 한나라당의 영향력이 매우 줄어들면, 그때 가서 세포분화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사실 저도 한 8, 9년전쯤엔 그런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양 방향에서 비판을 받았죠. "진보정당이랑 함께하기가 버겁다." "왜 보수정당인 민주당과 함께해야 하느냐." 그리고 그런 면박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소위 자유주의 민주세력과 진보좌파세력의 간극이 벌어지고 말았던 겁니다.

뒷풀이 자리에서 다른 분들과도 이런 논쟁을 많이 하였습니다. 주로 노사모나 국민참여당 당원, 유시민 팬클럽에 계신 분들과의 생각차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또 한편으로 대단한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최근 수년간 정파간 갈등과 반목을 겪어왔던 한 사람으로서, 여러 세력이 한 정당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굉장히 험난한 사건들을 감내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한지붕 하에서의 싸움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물론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각 정파의 독자적 존재가치에서부터 강령과 정책, 독립적 사무를 제각기 인정하고, 정파의 등록제와 명부선거제를 통해 당원의 뜻에 따라 각 정파에게 당직과 후보직을 할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민주진보대연합정당이 내부 이념차를 극복하고 잘 돌아갈 수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연합이 가능한가, 연합에 명분은 있는가, 등의 주제는 단기간에 뛰어넘기 너무 힘드니까요. 
그래도 문 배우의 문제의식과 사자후는 여러가지 화두를 남깁니다. 지금 야권은 이리저리 분화되어 있지만 그중 단 하나도 속시원하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김대중, 노무현에게 필적하거나 나아가 그들을 뛰어넘을 리더도 없습니다. 한나라당 반대층은 더욱 두터워지고 있는데, 딱히 밀어줄 정당을 못 찾는 시민이 많습니다. 이 상황에서 앞뒤 재지 않고 치고 나온 문 배우는 풀리지 않는 답답함을 풀어주었기에 많은 이들이 가담하고 나서는 겁니다.

또 어제 강연을 들으면서 원래 내 자신이 일전에 가진 예상만큼 괴리가 크지는 않다고 느꼈습니다. 문 배우도 "민주정부 10년의 반성"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한미FTA 강행이나 비정규직 양산 등을 드셨습니다. 그는 그냥 "무작정 한나라당을 이기기 위해 다 입닥치고 뭉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문 배우는 "어떻게든 남는 장사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맞는 말일 겁니다. 꼭 야권대통합을 이뤄야 문 배우의 작업이 성공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저는 강연회를 열심히 준비하신 한 참석자께 "이 기차가 부산까지 가는 건 동의 못해도 대전까지 가는 것은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문 배우의 노력이 그 프로젝트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유익하기를 바랍니다.

1차 뒷풀이를 끝내고 기념촬영. 오른쪽은 아이쿱생협과 진보신당에서 활동하시는 김원 님.


추신: 중앙정치와 별개로 지역에서는 어떻게 민주진보연합을 할 것인가, 이 숙제가 남습니다. 저는 선거 때 '연합 후보'보다는 그냥 '무당적 진보 후보'를 표방했습니다만,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당원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도움을 받아 당선되었습니다.

이것은 구미에서 야권 후보를 발굴하기 어려운 배경에서 기인하기도 합니다. 저는 야권의 '단일 후보'가 아니라 '유일 후보'였던 거죠. 다만 저는 이런 연합을 선거공학적인, 단순한 반-한나라당적인 성격으로 끌고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분명히 기반하고 있는 가치와 정책의 시민연대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지방의원 선거에서는 무리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국민참여당 후보가 지역에 나오셨다면 저도 지지를 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2년 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어떻게 될지 고민이 됩니다. 만일 후보가 나오면 저는 제 나름의 기준과 요구를 수립할 텐데요. 사실 그 전에 후보를 내는 것부터가 숙제지만 말입니다.

추신2: 어머니와 강연회에 동행하였는데, 저와 달리 문 배우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백만 민란에 가입하실지도...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