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동이 먼저다

금속노조 집회에서, 내가 선 곳을 묻다

왜 우린 우리 스스로 만든 권력이 필요하다는걸
알면서도 왜 아직 망설일까요 똑같은 놈 똑같은
권력이 싫고 염증이 난다 하면서도 왜 아직 망설일까요

돌아봐요 아니 돌아볼 필요도 없지 지금 저들이 만든
저들만의 화려한 축제 뒤에서 누가 직장을 잃고 거리를
떠돌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나갈지 막막해 눈물짓는지

지금은 우리가 스스로를 믿어야 할때 부족하더라도
잡은 손 놓치지 말아야 할때 그러다 너무 힘들땐 같은
날에 같은 시간에 같은 목소리로 욕이라도 실컷 해봐요

"아직 부족해서"라는 말은 말아요
"아직 때가 아니라서"라는 말은 말아요
그건 완벽한 부모가 되기전엔 아기는
갖지도 낳지도 말란말과 똑같잖아요 똑같잖아요


선거로고송으로 썼던 <착한 사람들에게>를 오늘 라이브로 들었다. 서기상씨의 목소리로. 작곡가인 정윤경씨에게 부탁해서 선거로고송으로 썼던 노래다. 그는 "돈 없는 선거 하실 텐데 그냥 (무료로) 쓰시라"고 허락해주셨고, 나는 "서울 올라갈 적에 술 한번 사겠다"며 약속했는데 아직은 지키지 못했다.


구미KEC사태에 관해 노동지청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집회였다. 서기상씨가 마지막으로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주변으로 나와 다른 흡연자들 틈에서 담배를 물었다. 그때 나는 낯익은 얼굴을 봤다.

쌍용차 취재할 적 만난 구로정비지회 노동자였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7개월 전이다. 구미에서 활동하러 내려간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칼라TV 일할 적에 뵈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기억이 자세히 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반가운 표정이었다. "쌍차 조합원들은 어찌 지내십니까"는 질문에 "그리 좋지는 않다"고 하셨다. 해고자든 무급휴직자든 그럴 것이다. 특히 무급휴직자들은 실업수당도 받을 수가 없다.

노동지청앞 집회를 끝내고 가두행진을 하기 전 금속노조 노동자들은 중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태를 방기한 노동지청에 계란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뒷편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다가 그 쌍차 노동자를 놓쳤다. 이게 결국 내가 취할 행동인가? 나는 그저께 KEC앞 문화제 연대발언에서 "차라리 내가 시의원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자조 섞인 발언을 뱉기도 했다.  

오늘 쌍차 조합원 외에도 낯익은 얼굴들을 많이 보았다. '여기가 구미인지 서울인지' 헷갈릴 만큼. 헷갈리는 것이 좋은 것이다. 연대투쟁하고 있다는 현상이니까. ('노동자'는 '직원'과는 다른 말이다. 그래서 노조형태도 기업별보다는 산별이 좋고, 산별보다는 지역별이나 전국단일노조, 나아가 국제노조가 더 좋다. 각개약진하면 각개격파당하거나, 실리주의를 빙자한 협조지상주의나 조합주의에 빠질 뿐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중소기업과 영세상인들이 어려운 시대를 감안하면, 더욱더 사업장단위를 뛰어넘어야 한다.) 


하지만 연대하러 갔던 나는 내가 선 곳을 묻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쯤 서 있고 어디에 서야 하는가. 2006년 말 비정규직법 개악안이 통과될 때, 민주노동당 9명의 의원이 플랭을 펴고 항의했으며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인 임종인 의원도 반대토론이 가로막혀 버렸다. 속이 터지는 일이었고, 여전히 가끔 그 시절 동영상을 보면 눈물나기 일보직전이다. 그때 "전원 항의사퇴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에 나와 몇몇 벗들은 화가 너무 나서 "수수방관도 안 되지만 사퇴도 안 된다. 거기까지 들어갔으면, 하다못해 국회안 전자개표 시스템이라도 고장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했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노동법 개악안 따위 지방의회에는 올라올 일 없으니 개표 저지를 할 일도 없겠지만, 나는 무얼하고 있는가.

얼마 전 야3당-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전투경찰들에 가로막혀 있었다. 내가 노동정치를 지향하는 진보 의원이고, 구미가 공단지역, 노동자도시이므로,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올 거라는 예감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리도 빨리 다가왔다. 안치환의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는 노래가 생각난다. 촛불 들고 유권자들에게 길거리 인사를 하던 몇달 전의 내가, 고3시절 파업 중이던 한 회사앞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지나가던 내가, 원주 전공노 사태 당시 전투경찰로 서 있으면서 '제대하면 진보정치,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물어오는 것만 같다. 나의 방향은 어딘가.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 - 정지원


세상의 모든 것들은
중심을 향해 흐른다
폭포수처럼 산의 정수리에서
차고 맑게 흘러서
비겁과 거짓의 복판을 뚫고 간다

중심을 잃어 어지러운 날
내 피를 보태어 사위어가는
잊혀진 나무와 바람과 새와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의 동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다면

역사의 중심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물기둥 뿜어내는 시원을 찾아 걸어갈 때
몸부림 칠수록 고통이 헤집고 박혀와
시퍼렇게 질려 생을 마칠지라도
나는 세상의 많은 폭포수들이
일제히 쏟아지는 장엄한 그 시간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다리겠다